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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an 11. 2023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

1.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는 그가 임종 3일 전까지 썼던 짧은 메모를 묶은 책이다. 다정하고 따뜻한 감성과 오래 사유한 지성이 짧고 간결한 문장마다 깊게 배어 있는 이 책은 쓰여있는 글보다 훨씬 많은 말을 건네는 책이기도 하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까지 손바닥을 책의 가운데에 올려놓고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되는 책이다. 


  가령 나는 이런 구절에서 오래 머물렀다. 

"살아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예전에 예술 프로젝트를 하던 아이들이 자주 위험한 도구로 작업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마음의 어려움도 겪고 있던 터라 몇몇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조심해 주기를 당부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자 나에게 만나주기를 부탁했다. 아이들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건 예술이다" 그날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삶이 있어야 예술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살아 있어야 하고 살아 있는 한 삶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것이 각자의 삶에 대한 예의이고 너희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라고도 말했던 것 같다. 그때 내 목소리는 간곡했고 단호했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그중 한 아이가 긴 편지를 내게 보내준 적이 있다. 편지의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 시절 자신이 얼마나 삶과 세상에 분노하며 살고 있었는지 그날의 대화를 통해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문장이 기억난다. 아이는 편지를 쓰면서 많이 울었다고도 했다. 지금 그 아이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더 이상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를 겨울햇살이 가득한 학교에서 기도하고 있다. 하루하루 그 어느 시간에도 우리에게는 삶이 있다.    


  그렇게 이 책의 모든 문장의 정원마다 나의 이야기를 꽃처럼 심어둘 수 있었다. 


2.

  피아노가 건반과 손가락 사이의 관계에서 태어나는 아름다움인 것처럼 어쩌면 삶도 죽음도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나의 영원한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치매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꿈에 나온다.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고 직접적으로 내 삶에 존재하고 있고 살아계신 것 같다. 살아계실 때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서먹하고 어색한 사이였지만 나는 시창작 수업시간에 반드시 아이들에게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계속 나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는 시간의 힘으로 더욱 깊어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어설프고 부족한 이야기이겠지만 나는 할머니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할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말하게 된다. 흔들의자에 앉아 찬송가를 부르던 할머니, 달력 뒷장에 동물을 그리고 가위로 오리고서 인형처럼 가지고 놀라고 했던 할머니(나는 그때 할머니가 그려주신 동물의 모양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목이 짧았던 기린까지),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자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렸던 아버지와 고모와 농약을 마시고 함께 죽을 결심을 했던 할머니, 제대하고 할머니와 둘이서 함께 살았을 때 언제나 고봉밥과 김치찌개를 해주었던 할머니, 어느 날 할머니방에서 들려오던 낮은 울음소리도.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보다 돌아가신 후에 나는 할머니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이 기억나고 더 많은 것들을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다.            


3. 

  언젠가 내가 죽는 날이 오게 된다면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떠오르게 될까? <아침의 피아노>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을 죽음을 생각하는 오후에 혼자 소리 내어 읽어본다. 


"사랑에 대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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