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철원 Jan 20. 2023

우린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어요.

1.

  아이들은 졸업했고 학교를 떠났다. 나는 축사를 읽을 때도 졸업장을 줄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들어와 오래 머물렀던 것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고 난 후 나는 가끔 예기치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눈물을 글썽이게 된다. 늦은 밤 따뜻한 밥을 조금 입에 넣을 때, 텅 빈 교실에 들어온 햇살을 바라볼 때, 눈 덮인 운동장과 고드름이 돋아난 농구대 앞에서, 겨울바람이 숲을 흔들고 하늘 저쪽에서 노을이 붉어질 때, 신호를 기다리는 버스 안에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러니까 나는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셈이다.

  왜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왜 더 아픔에 다가가지 못했을까? 왜 더 현실을 바꾸어내지 못했을까? 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왜 더 구체적인 사랑과 지혜를 주지 못했을까? 뼈아픈 후회와 깊은 미안함의 나날들이다.


2.

  그럼에도 아이들이 내게 남기고 간 편지에는 지나온 시간 우리가 함께 키워왔던 우정이 가득 담겨 있다. 글쓰기와 데미안 토론하기를 못한 일이 아쉽지만 진심으로 충분한 배움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아이가 있었고, 살아서 계속 말하기로, 힘닿는데까지 살아보기로 선생님과 약속하겠다며 선생님도 자기와 약속하자던 아이가 있었다. '자주 뵙고, 오래 뵙고, 하늘이 허락하는 데까지 살아보기로. 봄도 보고 여름도 보고 가을도 보고 겨울도 보기로, 그것들을 많이 보기로' 나와 약속하자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많이 사랑한다고 썼다. 나도 많이 사랑한단다 아가야.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과 일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웠던 것들, 따뜻한 위로와 동행, 세계를 이해하고 사유하는 힘,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는 마음과 행동,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이유를 찾으려 애썼던 고난의 여정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보았다.


3.

  작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적 소장품>이라는 전시회를 본 적이 있었다. 신경희 작가의 <퀼트>라는 작품을 오래 바라본 기억이 있다. 사진, 판화, 손바느질 등 수공업적인 작업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작은 이미지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고 보는 내내 나를 뭉클하게 했다. 감히 작품 속에서 작가의 부지런한 손과 성실하고 단정하고 다정한 마음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눈물짓게 했다. 어떤 신념은 우리를 눈물 나게 한다.

  그때 나는 국어 선생님과 고3 아이들과 함께 <문장론> 수업에서 우리 모두 삶의 예술가가 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우리 삶의 예술가들을 초대해 수업에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작품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분을 수업에 모셔야겠다고 생각하고 짧은 편지를 썼다. 떨렸고 설레었다. 편지를 중간쯤 썼을 때,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찾다 그녀가 2017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노트에 적었다던 이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지난겨울 나는 종종 울면서 걸었다. 그 겨울의 들판은 분명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견디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그런 나를." 

  '견디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작가를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내내 생각했다. 함께 수업을 했던 선생님도 몸이 아파 6월부터는 혼자 아이들과 수업을 해야 했다. 신경희 작가도 <문장론> 수업을 구상하고 함께 했던 그 선생님도 모두 생을 '울면서 걸었던' 사람들이다. 그 두 사람을 생각하며 나는 이를 악 물고 나머지 수업을 모두 끝냈다. 나는 지금도 작가에게 썼던 미완성의 편지를 꺼내어 본다. '신경희 작가님께'라는 첫 문장만 읽어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4.

  졸업식이 끝나고 그 <문장론> 수업을 들었던 아이가 내게 준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었다.



'삶을 진정으로 돌아볼 때, 그중에 한 가지 잘한 점은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을 꼽고 싶습니다.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도, 아름다워질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을 보면서 바뀌었어요. 아파했음에도 아름다워질 수 있더라고요.'


  신경희 화가님에게, 그리고 나에게 한 번 아름다운 일을 해보자고 수업을 제안했던 선생님에게, 이제 학교 밖의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난 아이들에게 이 문장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인생에서 내가 가장 잘한 것은 당신들을 만난 것이고, 당신들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모든 것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


  잘 가라 아이들아, 가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