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철원 Jan 24. 2023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었고

1.

  패싱 캐어(passing care)는 환자를 가르치고 교정하려고 하거나 그에게 지적이나 조언을 하지 않고 환자의 곁에서 그를 기다려주면서 편안하게 해 주고 그에게 정확히 필요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돌봄을 말한다. '곁에 있겠다'는 다짐과 약속이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고통에 공감하고, 그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지나친 보호와 친절도 반대로 그 사람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도 모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병자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존재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존엄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2.

  영화 <스틸 앨리스 Still Alice>는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게 언어학자 앨리스 하울랜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있을 때 그 누가 우리를 진지하게 대해줄까요?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병의 모습일 뿐이지요. 저는 살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고 싶은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가 고통받고 있다고 하지 마세요. 저는 고통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싸우고 있습니다. 과거의 저와 연결되기 위해, 현재를 살기 위해서요."


  앨리스는 우리가 병을 앓고 있을 때 그것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병의 모습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병의 모습일 뿐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병을 숨기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이 오직 그 병으로만 설명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일 것이다. 나는 고통뿐 아니라 기쁨이 있는 사람이고 아픔 못지않게 갈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앨리스는 자신의 과거보다 오히려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어떤 과거의 경험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것보다는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를 희망하기 위해 자신이 지금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를 더 많이 말하고 싶어 한다.

  삶이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되는 한 우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어쩌면 우리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병의 증상보다는 그의 내면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의 감정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의 기분에 대하여 지금의 마음에 대하여.   


3.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일까? 내가 사랑한 그의 어떤 부분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혹은 내가 몰랐던 그의 고통을 알게 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다만 지금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당신의 곁에 있겠다는 것, 내가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고,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자 당신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우린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시간을 살고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