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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an 25. 2023

아름다운 것은 절대 죽지 않는다.

1.

  늦은 저녁 회의를 위해 학교에 남아있다. 이런 날들은 일상이지만 오늘같이 추운 날은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어떤 공동체든 안건을 처리하고 사고를 수습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의제도 있을 수 밖에는 없지만 그 속에서도 진실한 대화와 이면의 생각들이 누구도 다치지 않으면서 이루어져 우리가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하기를 언제나 바라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아무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가 현실의 모순을 받아들여야 할 때는 기꺼이 그것을 분별할 수 있고 바꾸어야 할 일에는 용기와 결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회의를 기다리며 작년에 <문장론> 수업 시간에 삶의 예술가로 초대했던 졸업생이 교장실에 몰래 남기고 간 메모가 보여 다시 읽는다. '남 좀 그만 챙기고 본인 챙기세요',  '또 만나요 친구', '샘 밥 먹어요' 등등. 포스트잇에 적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추워서 몸을 떨고 있는 나를 빙긋 웃게 했다. 그중 한 명은 내가 교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샘 꺼 다 주면서 하지 말라고' 했고 연임을 하자 '영혼 뺏기지 말고 쉬엄쉬엄'하라고 했다. 여기에는 아끼는 마음과 염려하는 마음, 하지만 너의 선택을 존중하니 부디 아프지 말라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이제는 벌써 서른넷이 된 그 아이가 서른에 내게 보낸 문자를 기억하고 있다. 한 달 반 있으면 서른이 된다고 하면서 '샘 서른 되면 죽는 거 아니죠?' 그렇게 문자를 보냈더랬다. 나는 이렇게 답장을 했다. '넌 열네 살에도 서른에도 똑같이 내겐 가장 멋진 사람이다. 아름답고. 그러니 안 죽지. 아름다운 건 절대 안 죽는단다. 그러니 계속하렴. 나도 그럴게'

  아이는 내가 여전히 꾸준히 자기를 울리는 사람이라고 했고, 내가 처음으로 자기를 믿고 아름답다고 해준 사람이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아름다운 것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그 말은 그 아이와 내가 함께 고통의 시간을 통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말은 누군가를 버티게 해 준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되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그 아이가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었다. 아름다운 관계란 그렇게 한 사람이 한 일을 다른 사람이 거울처럼 다시 되돌려 주는 것이다.


3.

  얼마 전에 졸업한 아이가 보낸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저는 ‘아직’ 엄청난 어휘력으로 문학작품의 한 문단처럼 대단히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아직’은 나중을 품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제 온전한 마음을 담은 글의 한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일을 조금씩 해내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말하고 싶었음에도 목구멍에서 멈춰버렸던 이야기들을 입 밖으로 내고, 나의 슬픔을 나누는 것에 겁내지 않고 눈물 흘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 창작 수업의 첫 시간, 칠판에 적혀있던 글이 생각납니다. ‘문학은 삶을 구할 수 있을까’ 졸업이 다가온 지금, 제3년을 돌아보며 이 글에 대답해 보자면, 저는 문학이 제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저를 구해주는 밧줄의 역할이 아니라, 얼른 계단을 만들어 구덩이에서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을 주는 역할인 것 같습니다. 제게 참 많은 힘을 주신 선생님께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문학이 구덩이에 빠진 자신을 구한 밧줄이 아니라 계단을 만들어 그 구덩이를 나올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말한 이 아이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네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는 것을. 내가 한 일을 너도 나에게 했다는 것을. 네가 나를 구했다는 것을. 이렇게 추운 겨울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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