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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Jan 28. 2023

삶을 떳떳하고 아름답게 감당하기

1.

  책은 쓰인 활자와 단어와 문장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한병철의 <고통 없는 사회>를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마주쳤다. "고통 속에서 더 많은 양의 웃음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 깊이가 있다. 이전에 인간의 고통 속에 깊이 파묻힌 적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웃을 수 없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많은 것이 떠올랐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을 때 나는 언제나 유머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던 유머는 유희, 즐거움, 쾌락이라기보다는 고통 속에서 웃음을 찾아내고 웃을 수 있고 그 웃음을 표현할 줄 아는 것에 가깝다. 나는 삶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불확실하며 그럼에도 우리는 견디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과 무기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시와 문학이 그 무기 중 하나일 거라고 믿고 있다. 

  시창작 수업 시간에 우리는 많이 울기도 하지만 많이 웃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봄날의 꽃과 여름날의 나뭇잎처럼 가을의 새들과 겨울의 눈사람처럼 까르르 웃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그것은 우리의 눈물과 함께 가는 웃음이다. 


2. 

  우리는 과거의 열등감과 부끄러움, 실패와 낙담과 싸우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안정적인 공간과 시간과 사람들이 필요하다. 학교와 교육과 어른들이 해야 할 일에는 이런 것들도 있다. 시창작 수업은 매일매일 조금씩 괜찮아지려고 애쓰는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인생에 대해 쓰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듣는 시간이다. 글을 쓰면서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글을 들으면서 그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간다.  


3.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 하나하나를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우리는 그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고 자신의 모든 모험의 발걸음들을 끌어안으려고 애써야 한다. 그 모든 발걸음들의 의미와 가치는 같기 때문이다. 그 발걸음들의 끝에 나오는 결과를 나는 떳떳하고 아름답게 감당하고 싶다.     


4. 

  책 <고통 없는 사회>가 불러일으킨 수많은 상념들에 대해 써나가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당신에게 했던 말들은 여전히 당신의 마음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현실의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희망의 무기가 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당신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토요일 저녁이다. 거리에는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먼 하늘의 구름들이 붉어지고 있다. 가장 외로워지려는 시간, 나는 나의 외로움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외로움에게 말을 걸고 외로움이 나에게 하는 말도 귀를 기울여 들여보려고 한다. 

  당신이 지금 혹시 외롭다면 부끄럽다면 원망하고 있다면 후회하고 있다면 자책하고 있다면 불안하고 우울해하고 있다면 그 외로움과 부끄러움과 원망과 후회와 자책과 불안과 우울에게 말을 걸어보면 어떨까? 그것들이 당신에게 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어떨까? 따뜻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득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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