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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Feb 01. 2023

꽃이 피어날 것 같은 아침에
보내는 편지

1. 

  교장실 문틈에 누군가 편지를 끼워놓고 갔다. 올해 졸업한 학생의 편지였다. 월정사에서 '소중한 작별의 준비'를 하며 보낸다고 했다. 아이의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있었다. "미워했고 증오했던 모든 것에 나의 예쁜 보조개가 드러날 만큼 미소 지어줄 수도 있어요. 정말 싫어했던 이 학교도, 나를 거부하는 것만 같던 이 마을도 이제는 벌써부터 그리워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아이는 자신이 '사랑으로 가득해졌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제일 자세히'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언제나 아이들은 미움과 증오 옆에 사랑을 함께 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사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씩씩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도 가지고 있다. 긴 미움과 고통의 시간 끝에 마침내 사랑으로 가득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으나 이제 아이는 졸업을 했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편지에서 나를 '안기고 싶다가도 또 동시에 안아주고 싶은 너무나 작은 나의 우주'라고 했고 자신의 '가장 예쁜 생각'을 나에게 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아이와 내가 교사와 학생을 넘어서 가장 연약한 하나의 존재들로 서로 안기고 안아줄 수 있는 관계여서 다행이었고 행복했고 뭉클했다. 


2. 

  안기고 싶으면서 동시에 안아주고 싶은 사람이 나에게 있을까? 미워하고 원망하고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했던 누군가를 다시 따뜻한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과 힘이 나에게는 있을까? 오래 생각하게 되는 2월의 첫날 아침이다. 


3. 

  봄이 온 것처럼 따스한 아침이다. 흙은 부드러워지고 바람에는 남쪽의 향기가 묻어있다. 아침부터 햇살이 노랗게 방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 한적하고 고요한 시간, 나는 까닭 없이 조금 슬퍼져서 가만히 벽에 붙어 있는 고3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꽃이 피어날 것 같은 아침이며 멀리서 그리운 사람이 올 것 같은 아침이다. 나는 서랍 속에서 가장 아끼는 편지지를 꺼내어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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