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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Feb 05. 2023

잘 하자는 마음보다 잘 배운다는 마음을 갖기

1.

  해마다 4월이 되면 학생회 임원들의 워크숍이 있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언제나 처음으로 말하는 것은 '출발의 마음'이다. 왜 시작했는지, 무엇이 당신을 이끌었는지, 당신의 깊은 마음에 물어보라고 말해주면서 언제나 가장 미세한 것,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작고 쓸모없는 것이 세상을 바꾸며 사소하고 하찮은 것만이 새로운 것이 될 수 있고 디테일이 우리의 일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고 말해준다.

  그 시작과 출발의 마음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하며 말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잘할 수 있다고 다짐하기보다 배우면서 알아간다고 생각하라. 우리는 연약하고 서투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언제나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시작할 수 있고 출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시작과 출발의 능력을 믿자.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의 마음은 타인을 향해 있는가?"  


  나는 아이들에게 잘하려고 하지 말고 잘 배우려고 노력하자고 말해준다. 잘 배우는 사람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고 유연하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좋은 것들을 알아보고 자기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책과 경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에서 어떤 단서와 영감을 포착할 수 있다.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려면 과정의 디테일과 순간순간의 감각에 반복적으로 숙련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점점 나만의 변주와 창조가 일어난다. 공부의 과정이 그러하다.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과 불안은 때로 역설적으로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하며 나아가 자신의 영혼과 마음에 상처를 낸다. 가장 불행한 결과이다. 우리는 내가 나를 상처 주고 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상처는 오래 깊게 나에게 자국을 남기며, 사라지지 않고 나의 현재와 미래에 계속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으며 어떤 내면과 힘이 되었는지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 글을 쓰고 말을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며 또 거기에서 우리는 배운다. 내가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고 배웠는지가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러니 진로와 성공을 생각하기 이전에 배울 수 있는 용기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자.       


2.    

  학생회 임원들과의 워크숍에서 다루어지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모순을 끌어안는 것'이다. 우리는 나, 다른 사람들, 세상을 어떤 이상적이며 완벽하고 고정화된 이미지로 그린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 머릿속에서 그려진 이미지에 불과하다. 실재하지 않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이지도 않다. 현실은 언제나 매끄럽고 곧게 뻗은 도로와 거리가 아니라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닮았다. 그래서 나는 자기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단순화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준다. 복잡함과 모순을 끌어안고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올해 졸업한 학생이 보내준 편지는 자신의 모순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그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저는 ‘동물해방’을 외치는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에서 하는 꽃풀소 프로젝트(도살용 소를 살려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프로젝트)에 매달 만 원씩을 후원해요. 그리고 가끔 빈혈이 도지면 소고기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고 부모님께 조르곤 해요. 학교에 다니면서 제가 무결한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많은 걸 배웠지만 그보다 더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나쁜 일이 많은 모순적인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도 더 좋은 방향으로, 더더욱 좋은 방법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또, 제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동물해방을 외치는 단체에 후원하면서도 소고기가 먹고 싶어(물론 빈혈 때문이기는 하지만) 부모님을 조르는 아이는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와 모순되는 행동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모순과 연약함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그 상태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이 아이처럼 그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아이는 편지에서 '더 좋은 방향', '더더욱 좋은 방법'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표현했다. '더'와 '더더욱'에서 나는 문득 뭉클해졌다. '그래 내가 지금 이런 마음과 생각, 이런 갈망과 욕구를 가지고 있구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하고 인정해야 그다음의 방법이 떠오른다. 자신을 채찍질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지금 나의 마음과 생각, 나의 갈망과 욕구가 나의 존재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많은 알 수 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는 미지의 존재이므로.  

  그 결과 이 씩씩하고 용감한 아이는 자신이 더 좋은 방향과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믿고 있다. '제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는 문장을 당신에게도 주고 싶다. 당신의 문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3.     

  어쩌면 삶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습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생각은 '지금의 나'를 '똑같은 나'로 동일하게 만들고 강화시킨다. 생각을 멈추고 화분의 꽃에게 물을 준다.

  졸업식 날 어떤 아이가 졸업장과 꽃을 받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언제나 꽃을 주시네요." 나는 아이에게 꽃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문득 꽃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나는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꽃에 대한 책을 찾고 주문을 하고 책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그 배움의 여정을 함께 걸어갈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꽃에 물을 주는 어깨에 햇살이 내려앉아 따스하다. 당신의 어깨에도 그 햇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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