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전 아픈 사람을 돌보았던 적이 있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했던 것은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아침부터 잠이 들 때까지 마주하는 여러 가지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챙기고 도와주어야 했다. 그중에서도 밥과 잠은 가장 신경 써야 했던 것인데 매일매일 삼시세끼 그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거나 먹지 않으려고 할 때는 조금이라도 먹게 하려고 갖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 붕어빵과 특별한 간식과 따뜻한 커피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던 날이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비를 너무 많이 맞아 한동안 고열과 몸살로 아팠으나 여전히 아픈 사람을 간호해야 했기 때문에 금방 씩씩하게 털고 일어났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이상한 기운이 난다. 그때 나를 감싸고 있던 어떤 에너지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아팠으나 아프지 않았고 언제나 그 사람의 밥과 잠을 위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통이 심해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늦은 밤까지 깨어있는 그 사람과 함께 수다를 떨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 학창 시절, 부모, 오늘 있었던 일, 내일 할 일, 취미, 오늘의 날씨와 다음의 계절까지 아주 작고 하찮은 것들까지 우리는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와 마음의 상태와 기분에 대해서 내가 묻고 그 사람은 답하는 시간도 많았다. 그 사람이 언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낼지 몰랐으므로 나는 주로 의자에 앉아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돌보는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으나 나의 잠보다는 그 사람의 잠이 더 중요했다.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잠을 많이 자거나 깊이 자면 그날은 하루종일 기운이 났고 웃을 수도 있었다.
2.
아픈 사람을 위해 내가 했던 두 번째 일은 그 사람의 병에 대해서 공부하고 제대로 아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 사람의 병을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가진 한계 속에서 정확하게 도와주려고 애썼다. 나는 수첩에 내가 해야 할 일 못지않게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깨알같이 적어두었고 병과 관련된 책과 논문, 다큐멘터리와 영화 등의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서 읽고 보고 A4 한 장에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그걸 틈나는 대로 읽으며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탐구했다. 병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할 때는 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 것과 내가 답해주어야 할 것을 대화 전에 미리 정리하고 외우고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병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는 것보다 그 병에 대해 사유하려고 더 노력했다. 병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내가 많이 아는 것보다 그 병을 입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 애썼다. 특별히 병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구체적인 이야기와 이면의 맥락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이 치료의 주체가 되었어야 했고, 고통스러워하는 한 사람의 보호자가 되었어야 했다. 치료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너의 병에 내가 상관있으므로 너의 고통에 내가 기꺼이 응답하겠다는 마음이고 태도이다.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병으로부터 너를 보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병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너를 보호하겠다는 뜻이고 나아가 너의 존엄과 너의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모든 것들로부터 너를 보호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3.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따뜻하고 유머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병자보다 내가 더 긴장하고 불안해하지 않아야 하므로, 내가 더 유난을 떨거나 호들갑스럽게 하지 않아야 하므로 나는 나를 다스릴 수 있도록 성장해야 했다. 상처받기 쉬운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였지만 나는 더 강해져야 했고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조절하고 조율해야 했다. 그래야 곁에 있어줄 수 있었다. 곁에 있어주는 일이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몰래 울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서.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나를 돌보는 일에 가장 소홀했다.
4.
아픔을 겪는 것은 그의 영혼인데, 그 영혼에는 내 손이 미치지 않는다. - 허먼 멜빌
아주 오래전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단 하나의 문장을 떠올린다. 돌봄의 나날동안 언제나 내가 품고 있던 문장이다. 지금도 이 문장을 읽고 나면 꼭 울게 된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잃었는가 보다 결국 아픔을 겪었던 그와 그의 영혼이 더 소중하며 그의 치유와 회복과 그의 존엄과 미래가 더 귀중한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내 손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하는 나날들이었다. 후회하고 자책하면서 포기하고 체념하면서 그러나 마지막에는 꼭 더 노력하고 애쓰려는 다짐을 하는 날들이었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더 잘 해줄게요'였다.
당신의 아픔에 내 손이 미치지 않으므로 나는 당신을 향해 언제나 더 손을 뻗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