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철원 Apr 30. 2023

이해의 마음

1.

  아이는 갑자기 몸이 아팠다. 아픈 아이는 억울했고 화가 났다. 엄마에게 짜증도 내고 모진 말도 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엄마가 여전히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 자신을 대할 때 조심스러워한다는 것, 자신의 병이 엄마의 슬픔이라는 것을 엄마의 표정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이는 차마 그 말을 못 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나오던 날, 차 안에서 아빠는 아이에게 말했다. "나 원망해도 돼" 아이는 아빠의 그 말에 오히려 따뜻해졌다. 이제 자신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우리 가족 이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아이는 시창작 첫 글쓰기에 그렇게 썼다.


  아이는 계속 엄마와 아빠, 세상과 병을 원망할 수 있었고 미워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원망보다는 이해를 선택했다. 미움보다는 사랑을 선택했다.     


2.

  나는 이 이야기를 아이가 있는 학년 학부모 총회 때 용기 내어 말했다. 나는 그날 부모님들에게 혹시 아이의 부모님이 와주신다면 그분들에게 아이의 마음을 대신해서 전하고 싶었다. 물론 아이의 실명과 아이를 알 수 있는 상황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아이의 부모님은 그 아이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셨다. 뒷줄에 앉아 계셨던 아버님이 바다처럼 울기 시작하셨고 어머님은 슬픈 표정으로 울고 있는 남편의 어깨를 살짝 만져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이 착한 부부가 건너왔을 삶의 시련과 고난을 감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나는 오래 아팠던 우리 딸아이의 이야기를 함께 전하며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원망할 수도 있었고 미워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선택했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을 용서합니다. 삶은 불확실하고 우리 앞의 고통도 크지만 우리는 언제나 또 작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

  그 일이 있고 몇 주가 지난 후에 수업이 끝나고 나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학부모 총회에서 선생님이 이름을 말하지는 않으셨지만 그게 자기라는 걸 부모님이 아셨고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부모님이 잘 알게 되셨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셔서 고맙다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교장실로 돌아와서 이 다정하고 착한 가족에게 부디 행운이 깃들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서로의 아름다운 마음과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함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봤던 우리도 이해와 사랑의 태도에 대해, 말하기와 글쓰기의 힘에 대해 알게 되었다.


4.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은 설움과 원망을 만들기도 한다. 내가 너를 향해 열심히 걸었던 길이 무용해졌기 때문이다. '너는 그런 줄도 모르고 네 삶을 바쁘게 살아가기만 하는 것일까', '너의 삶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어떤 마음인지 너는 왜 그렇게 모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는 그 지점에서 원망과 미움 쪽으로 더 멀리 가지 않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나를 원망해도 된다는 아빠의 그 복잡하고 슬프고 미안하고 아픈 마음을 이해해 버렸고, 여전히 딸아이의 슬픈 운명 앞에서 슬픈 표정이 전부인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버렸다.       


5.

  오늘은 비 온 뒤에 밝고 빛나는 햇살이 거리에 가득하다. 이 고요한 일요일 아침, 나는 생각한다. 작고 소박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당신의 오늘을 이해할 수 있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 가치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