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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May 16. 2023

뜨거움과 따뜻함

1.

  지난 주에는 체육대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은 5월의 운동장에서 달리고 소리 지르고 하면서 일상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숲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따가운 햇살, 응원의 노래와 함성, 환하고 자유로운 아이들의 표정과 목소리, 우리에게는 언제나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체육대회의 마지막은 언제나 이어달리기이다. 나는 항상 이 마지막 이어달리기를 보고 있으면 가슴속에서 울컥하고 무언가 올라오는 것 같고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동자에 살짝 눈물도 맺히게 된다. 아이들이 뛰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이제야 그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 뭉클함은 경쟁에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노력하는 사람, 우리 팀이 꼭 우승해야 한다는 사람, 다른 팀에게 불운이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 빛나는 스포트라이트와 선망을 받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생긴 것은 아니다. 

  나는 달리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경기와는 무관하게 오히려 그들이 자기 몫의 시간과 거리에 각자 뜨겁고 강렬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오히려 승부에는 초연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자신의 손동작, 구르는 발, 바통을 받을 때와 줄 때의 타이밍, 직선과 곡선에서의 몸의 상태, 아이들은 그 순간에 최대한 집중하고 몰입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경쟁과 승부와 달리기 그 자체까지 초월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한 넘어지고 구르고 느려지고 실수하고 실패하는 어떤 인간적인 것들이 함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거리만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지 못한 것'까지 완전히 쏟아내고 싶은 어떤 인간의 모습을 나는 아이들의 달리기에서 읽었다. 삶은 불확실하고 우리의 시련과 고통은 끝이 없으나 살아있는 한 우리는 손에 바통을 꼭 쥐고 나만의 몫을 해내야 한다. 

  아이들은 경기가 끝나고 모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 결과는 팀의 승패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달리기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신의 달리기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까지 쏟아내고 자신이 의도하진 않은 실수와 실패의 결과를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내 나를 뭉클하게 한다. 인간의 삶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2. 

  스승의 날, 졸업생이 교장실 문틈에 편지를 두고 갔다.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열다섯 번 있었다. 가령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저는 학교를 떠올리면 너무너무 눈물이 나게 된 것 같아요. 학교를 다니면서 겪었던 아픈 일 때문이라기보다는 학교 다닐 때 받았던 따뜻함들과 따뜻한 사람들이 떠올라서.... 그게 너무 소중하고 슬퍼서 자꾸 눈물이 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는 따뜻함을 고마워하고 있었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따뜻함을 그리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따뜻함의 힘'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었다. "따뜻한 작아도 너무 소중해서 그런 따뜻함 하나만으로도 살아갈 있다는 신기해요."   

  아이는 따뜻함에 무뎌지는 게 세상을 덜 아프게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주었던 시집과 책들을 자주 꺼내 본다고 했다.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선생님과 친구들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아이는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이 따뜻함을 꼭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여 아이의 편지는 이런 강하고 아름다운 다짐으로 끝맺는다. 

"항상 생각하고 있었는데, 용기가 안 나서 말씀을 못 드렸던 것 같아요.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 따뜻함을 나누는 법을 가르쳐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해요. 조금씩 더 성장해서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따뜻함을 나눠 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사람이 될게요. 건강하고 잘 지내세요!" 


  이 슬픈 세상에 '따뜻함'이라니. 하지만 아이야 네가 옳단다. 우리가, 우리가 더 따뜻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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