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들과 시를 썼다. 시인 이성복은 <불화하는 말들>에서 '시적 글쓰기는 비틀기, 틈새 만들기, 어긋나기'라고 쓰면서 예를 들어 '나는 밥을 먹고......라는 말 뒤에 밥그릇 속에 잠시 앉아 있었다는 말을 끼워 넣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시인은 '문장을 살짝 비틀기만 해도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고', '그건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섬광'이라고도 썼다.
'나는 밥을 먹고 잠을 잔다'거나 '나는 밥을 먹고 학교에 간다'는 문장은 생활의 세계이다. '나는 밥을 먹고' 뒤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다른 문장이 올 때 우리는 그 순간 멈춰서 비로소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낯선 인식과 낯선 감정과 만나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주 따뜻한 햇살에 잘 마른빨래를 개거나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바라보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우리에게는 시의 세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시간에 마주한 '섬광'을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섬광'과도 같은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다.
2.
최근에 시인 안미옥의 시 <주택 수리>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과일장수는/ 과일이 썩어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다'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나에게 남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과일장수는 과일을 열심히 파는 사람이겠지만 그는 과일이 썩어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다. 더 좋아지고 나아지기 위해 우리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애써왔던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지거나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실수와 실패들이 일으킨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내내 부끄러웠고 죄책감이 들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관계와 공동체에 나 스스로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3.
이수는 4월 수업시간에 3월 첫 글쓰기 시간에 채윤이가 쓴 글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엇이 아이에게 오래 남았던 걸까? 이수는 채윤이의 글을 들으며 자신의 마음을 엄마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순간이 떠올랐다고 했다. 아이는 그 이야기를 하며 고개를 들어 교실 천장을 바라보고는 애써 눈물을 참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슬퍼하는지를.
이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현이는 눈동자가 붉어졌다. 지현이는 바닷가에서 아빠가 "지현아 아빠는 너를 사랑해 너도 아빠를 사랑하니?"라고 말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이 내내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은 이렇게 시가 된다.
그리고 채윤이에게서 이수로 이수에게서 지현이로 지현이에게서 또 누군가로 이렇게 시는 내내 아름답게 태어난다.
4.
오늘 아침 나는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바나나 우유와 초콜릿과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응원하고 지켜주는 것, 말에 힘을 실어주는 것, 긍정의 눈빛, 응원의 한마디, 시시껄렁한 농담, 몰래 가져다 놓은 간식 그 모든 것들이 저를 지켜주어요'
어제 나는 3월과 4월에 생일이었던 선생님들을 위해 꽃 그림이 그려진 예쁜 엽서를 골랐고 손 편지를 써서 하얀 봉투에 담아 드렸다. 그럼에도 가까스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았다.
5.
지금 나는 올리브 나무 잎사귀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해본다. 아름다운 것들은 결코 죽지 않으므로 당신은 4월의 봄꽃처럼 씩씩하게 피어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