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 건강 체크를 위해 다양한 검진 항목을 추가하여 종합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이후 삶에 대한 시각, 태도에 대해 내적 변화와 느낀 점이 있어 글로 남겨본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하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카페에 가서 겨우 무언가를 할 때 즈음 건강검진 결과서를 받게 되었고, 별생각 없이 결과서를 읽어나가는 동안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종합적인 결과는 아래와 같다.
간 효소 수치가 정상수치보다 4배 높음. 간질환 의심, 경한 지방간
이상지질혈증, 혈액 관련 특정 수치 높음. 재검 권고
만성표재성 위염
녹내장 의심 소견. 안과 정밀검사 권고
현실을 자각하고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몸이 순간 굳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며 진단명에 대해 검색하는데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덧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과, 안과에 방문하여 재검을 진행하였고 다행히도 질병으로 진단받은 것은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내 몸의 취약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사후 관리에 따라 얼마든지 질병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었다.
간 수치 정상
콜레스테롤 높음. 유전 추정.
위 관련 약 처방으로 호전되나 식습관 개선 필요. 정확한 확인은 내시경 필요.
녹내장 아님. 그러나 주기적인 검진 필요.
"아 맞다, 영원한 건 없지 내가 안일했구나.. 그동안 건강과 관련하여 별다른 생각과 제약사항 없이 행복하게 살았구나.. 이제는 그 시절도 지나가게 되는 첫걸음이구나." 라는걸 느꼈다.
아무리 가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노력 중이거나, 혹은 지금 소지하고 있더라도 만약 공기, 햇빛, 물이 없다면 어떨까? 나에게 건강은 바로 그런 것이구나 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건강과 주어진 하루, 해야 할 과업이 있고 그것을 해나가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늘 더 빨리, 많이 해야 한다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결코 중요치 않은 것이 아니라 건강에 비한다면 한 없이도 작은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건 건강, 내 옆의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부가적인 것 아닐까?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부가적인 요소로 내려놓게 되었다.
겸손이란 뛰어난 능력에 비해 아직도 부족함을 인지하며 꾸준히 정진하는 것 혹은 늘 낮은 태도로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진정한 겸손은 최고 가치인 건강이라는 운이 따라주어 오늘도 이 과업을 진행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되었다.
내 곁의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은 좋은 일이 있을 때 보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 더욱 실감하고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론 평소에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내 몸과 마음을 여유롭고 풍족하게 가꾸고 싶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날 저녁에 여자친구와 함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안정과 위로가 되며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 앞의 문제는 혼자 해결해 가며 헤쳐 나가지만 언제든 내 옆에서 도와주고, 보조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과거 쌓아온 인연들, 그리고 오늘 하루 잠깐이라도 스치고 맞이하는 모든 인연들이 소중한데 가볍게 여기며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핑곗거리로 미루는 게 아닌, 내가 노력하여 인연들에게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전 직장에서 알고 지낸 안부가 궁금하고, 고마웠던 분들에게 용기 내어 카톡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 계기로 경미한 건강의 적신호를 전달받았을 뿐인데도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만약 어떠한 질병이나 중증 판정을 받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되짚어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당연시 여기는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행위가 이제부터는 가끔 신경 써서 해야 하는 특별한 행위가 되어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슬프고 막막하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평일과 같은 일상에는 채소, 두부 등 건강한 음식들도 섞어 식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몸에 해로운 음식이 내 앞에 있다면 접시를 비울 때까지 먹는 게 아니라 적정량만 할당하고 먹는 식으로 절제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튀김을 절제하는 건 역시나 어렵다..
운동이라는 행위, 특히 유산소 운동은 기계에 기름칠을 꼭 해야 하는 것처럼 사고하고 주에 3번은 하고 있다. 요즘 또 이사, 저녁 약속을 핑계로 정신상태가 해이해져 가는데 다시 다잡아야겠다.
이번 해프닝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몸의 약점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고, 삶의 근본적인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시는 편이다. 규칙적으로 식습관을 유지하고 자제하며, 어설픈 체조와 같은 운동을 하고, 어떤 상황과 현상을 보면 늘 건강 관련하여 메크로처럼 같은 말을 잔소리처럼 설파하셨다. 이와 같은 행동들이 조금은 과하고 별나다고 생각하였으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성실하고 진심으로 자신을 아끼는 행위인지를.
나에게 남은 삶을 직선적으로 바라볼 때에 장수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챙기면서 나를 탐구하고 현재에 집중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하나씩 차분히 이루어가고 싶다.
만약에 현재의 삶이 권태롭고, 무료하다면 건강검진을 해보면 어떨까? 삶에 대하여 배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ㅎㅎ..
오늘도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늘 가는 카페에 잔잔한 미소와 눈인사부터 시작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