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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황토

그 다정함에 대하여

by 지개인

타고 온 차를 선에 맞춰 주차를 한다.

전진, 후진을 두어번 반복하였지만 내려보니 처음 주차선을 맞췄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직은 듬성듬성 빈자리가 남아있는 넓은 주차장과 대형버스에서 내린 초등 저학년들의 무질서한 설레임에 쉬이 편해지지 못한 채 안내표지판으로 걸어간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위치를 부러 확인하고 나서 맨발걷기를 시작한다.

황토 위를 걷는 두번째 경험이지만 이번엔 길의 시작점부터 걸으니 '맨발 온 걷기'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운동화을 벗어 정리대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곧이어 양말도 오른발, 왼발에 맞춰 운동화 깊숙이 밀어 넣는다.

온전히 발가벗은 발로 황토를 밟는다.

어제 온 비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일까, 아침의 황토는 그 싱그러움을 여전히 품고 있다. 차가운 생생함이 그대로 발바닥으로 전해져 온다. 차갑지만 쌀쌀맞거나 서늘하지 않게 그 물성 그대로 나를, 내 발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는 황토가 포근하다.


내가 갈구하던 다정함은 황토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발에 전해지는 간지러움에 기대어 '배시시' 웃어도 좋을 너른 등같은 든든함.

앞선 이의 발바닥 모양대로 자국이 남지만, 금새 뒤오는 이의 발자국을 받아내는 보드라움.

발가락 사이에서, 발바닥 모서리 끝에서 볼쏙 내미는 고운 질감.

잘고 순하여 폭신하게 빠지지만 끝내 발바닥이 만나게 되는 단단함.

그런 살가움과 다감함이 필요했나보다.

덤덤하게 무장한 채로 살고 있지만 실은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생경한 포근함을 반긴다.


일상을 산다는 건 계획적인 척, 객관적인 척, 무심한 척하는 내가 하루를 견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무디지 못한 사람이 덤덤하려 애쓰다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막막함을 황토는 특유의 잔 부드러움으로 안심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래, 괜찮다.

예민해져도, 날카로워져도, 힘들어도, 지쳐도, 주저앉아도, 화가 나도, 슬퍼져도, 우울해져도, 다 괜찮다.

이것 또한 '나'이므로.

오랜시간에 걸쳐 켜켜이 쌓였을 황토를.

그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지극히 잘은 알갱이들을.

그리고 이제서야 그것을 무던히 지켜볼 수 있는 나를.

함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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