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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개인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 전에 꽃을 피웠습니다.

그 전에 잎을 피웠습니다.

그 전에 싹을 돋우었습니다.

그 전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씨앗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비가 내렸을 것이고,

바람이 지났을 것이고,

볕이 뜨거웠을 것입니다.


때로 흔들렸을 것이고, 어쩌다 앙상했을 테지요.

그러다 문득 따뜻했을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건드려짐을 버티다

어느 새 금이 갔을테고 틈이 벌어졌겠지요.


일정한 속도로 쌓여가는 시간과

그 하중을 견디게 해준 틈.


살기위해. 살아내기위해.


틈은 바람이 지나는 길이 되었고,

숨이 머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틈이 남겨져서.


당신의 틈은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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