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옛동네가 현대식 섬으로.

by 지개인

우리 동네에 하나가 생겼다.

거인의 국자로 움푹 떠내어 다른 곳에 옮겨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모습으로.


잘 닦여 윤이 나는 도로,

사람 손을 탄 말끔한 나무들,

공중으로 곧게 빧은 육중한 몸.

그 안에서 같은 벽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리뉴얼된 섬.


옥상 한켠을 꾸며주던 붉은, 푸른 기왓장들,

팽팽하던 옥상 빨랫줄들,

찬바람을 고스란히 전해주던 벽들,

아랫목이 그을린 비닐장판들,

빗살모양으로 가장자리가 벗겨진 방의 문들,

손때 묻은 문고리들,

때가 되면 갈아끼워야하던 형광등들,

드르륵 드르륵 여닫히던 나무 창들,

마당과 골목을 구분짓던 녹슨 철문들,


그 속의 이야기들,


부엌 찬장을 무수히 여닫던 엄마의 손짓과

마당 한켠 뙤약볕 아래 등목을 하던 땀에 절은 아빠의 등과

골목 사이사이 숨바꼭질,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그리고 왁자지껄하던 재잘거림들,

동네 미용실 표 아줌마(뽀글) 파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골목사이를 지나던 바람이 묻는다.

'다들 어디로 갔나요?'

'다시 돌아오나요?'

바람은 끝내 대답을 듣지 못한다.


돌아오더라도 예전 모습은 사라졌고,

새로이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있은 적이 없었을 테니,

아무도 그 질문을 이해할 수 없기에.


현대식 섬에는,

달라진 시간 속 반복되는 공기가 있다.

잊혀졌다 다시 돌아오는 바람의 기억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Owl at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