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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우할배 Mar 07. 2022

변소에서 사단장실로

돌아보면 언제나 부끄럽다 #8-1

막내 시절에는 변소(군대 변소는 변보는 장소일  화장실이 아님) 앉아 볼일 보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자유롭다. 아무리 지랄 같은 고참도  누는 시간은  건드린다.    


그날도 아침 식사  식기 일곱  닦고, 사역 나가기  변소에서 약간의 자유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걸고리가 없는 뒷간이라  손으로는 문을 잡고 다른 손으로 담배를 즐기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 밖에서 똑똑 노크를 했다. 응답으로 노크를 하면 문이 열리기에, 나는 안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로 ''하였다. 그런데도 또다시 ‘똑똑하는 것이었다. 급한 모양이었다. 다시 사람 있다는 표시를 했다.    


 이병 안에 있나? 빨리 나와.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나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부관부  이병의 목소리였다. 나보다 2개월 정도 선임이었다. 아무리 군대라도 이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 변을 보고 있는 사람을 나오라고   있는가? 퉁명스런 말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봤어요. 왜요?"     


'  같은 모양이네. 고생   봐라.'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데, 까무러칠 만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뭐 잘못한 거 있냐? 부관참모님이 찾으셔. 빨리 나와.”

“예? 왜요?”

나도 몰라. 하여튼 빨리 나와.”    


이거저거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일을 보는  마는  튀어나왔다. 부관참모가 누구인가? 무궁화가   아닌가? 까마득히 높다. 훈병 때는 이병이 할아버지처럼 보였었다. 나는 지금 이병이지만 병장 정도면 할아버지 급이다.    

그렇다면, 하사면 증조, 중사면 고조, 상사면 현조...준위, 소위, 중위...소령, 중령. , 이건   거의 중시조급이 아닌가?     


 이병과 구보를 해서 부관참모실로 가면서 불안 속에서도  가닥 희망이 있었다. 큰형님이 장교 출신이고,  동기들이 지금쯤 중령 정도 아니겠는가?    


그러는 사이에 부관참모부에 도착했고, 참모실로 안내를 받았다.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경례를 했다.    


"화랑! 이병 ○○ 참모님이 찾으신다 해서 왔습니다."    


안경을 쓰고 서류를 뒤적이던 부관참모가 고개를 들더니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자네가 변 이병인가?"

"예, 그렇습니다."

"자네 국어과 졸업했나?"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대답을 들은 그가 다시 얘기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참모장님이 찾으시네. 빨리 올라가 보도록."    


이게 무슨 일인가? 사단 서열 5 근처인 대령이 이병을 찾는다니? 무릎에 힘이  빠져 내리는  같았다. 급하게 잔디 깔린 연병장을 가로질러 뛰면서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군대에는 특진이라는 것도 있고, 아니라 해도 큰형님이 발이 넓으시니 이제 손을 쓰시나 보다.'라고.    


참모장실은 CP건물 제일 왼쪽으로 정보처 사무실 옆이지만, 병사들은 가능한 멀리하고 싶은 곳이었다. 참모장실 문을 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화랑, 이병 ○○ 참모장님이 찾으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책상 앞에  있던 중사가 일어서서 따귀를 올려붙이고 말했다.     


"넌 뭐야, 왜 소리 질러?... 아, 니가 변 이병이냐?"

"네, 그렇습니다."

"조용히  , 임마."    


중사는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구두통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 새끼, 영창 보내야겠구만. 군화 수입 언제했냐?"

"지금부터 군화에  얼굴이 비칠 때까지 닦아서 온다. 실시"    


 군화는 사역을 다녀서 흙 범벅이었다. 당시 11사단은 군화 착용 시범 사단으로 훈련화 대신  일상생활에서도 군화를 신었다. 아무리 닦아도 광이 나지는 않았다.     


"야, 너 군대생활 얼마나 했냐?"

"3개월 했습니다."

"그걸  혼자 다했어? 그런데,    바로 입을  없어?"    


훈련소에서 지급받은  군복은 너무 컸고, 이병은 아무리  입어도 모양이 나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옷을 바로 잡아주었다.    


"이제 들어가 . 경례 구호는 너무 크게 하지 말고 절도 있게 ."    


하면서 또 다른 문을 열어 주었다. 아까 큰소리로 용무 보고를 했던 곳은 참모장실이 아니라 참모장 부속실이었다.    





 << 제우스가 악의를 담아 보낸 선물 상자를 판도라가 열었을 때, 세상의 온갖 해로운 것들이 모두 튀어나왔습니다. 그녀가 깜짝 놀라 급히 뚜껑을 닫자, 나오지 못하고 갇힌 것이 희망이랍니다.    


 훈련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사에게 당한 모욕과 수치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부관참모, 참모장에게 불려가는 이병은 가슴이 터질 정도로 불안했지만 무언가를 기대했습니다.     


죽음을 생각했던 일이나, 극도의 불안함 속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희망 때문인  같습니다. 그것이 가장  드러나는 것이 큰형님을  올린 것입니다. 거의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큰형님의 도움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판도라의 상자가 인간 마음의 부정적 찌꺼기를 상징한다면, 모든 것이  사라져도 마음속에 희망은 남아 있다는 신화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어쩌면 희망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형벌이라는 말이 옳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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