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가 되는 것, 그리고 네가 내가 되는 것

by sally


아름다운 生은 오월의 신록이 춤추는 초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쉼을 쉬는 것과도 같다. 그곳에서 우린 마주 보며 서로의 얼굴을 통과하는 초원의 눈부신 봄햇살을 볼 것이다. 인생의 환희란, 살아온 저 깊숙한 골짜기에서 길어온 생수를 먹는 것처럼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다. 희로애락을 손으로 만지며 느낄 수 있었던 생의 시간들 속에 사람의 아름다움은 분명 누구든 동일하게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 차이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날카로운 칼 끝을 만져야만 했던 날들. 외줄 타기에서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한 발자국을 떼기 어려웠던 날들.


우리는 이러한 생의 감정 위에서 또 다른 나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또 다른 "나"는 여기서 "너"의 얼굴이다. 스쳐 지나갔던 "너"의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생을 향해 견디며 버텼던 얼굴은 곧 "나"의 얼굴이었다. 타자의 생을 향한 울부짖음의 고통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내가 이 지면의 할애를, 곧 지고지순한 사랑의 윤리학을 거론하지 않는다. 그토록 우리의 生이 아름다워 지려 하는 것은 "내가 네가 되려 했던 것이고, 네가 내가 되려 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나의 생을 통과하면서 성숙하게 견디고 버틴 과정에는 분명히 타자의 생을 관통했다는 것의 의미가 함께 포함됐을 것이다. 나 혼자 무인도에서 사람은 생을 견디며 성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무인도에서는 허무, 고독조차 의미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가난한 자나 부귀한 자나 고통이 있는 자나 희열이 있는 자나, 생의 저울의 무게값은 언제나 동일하다. 누군들 최고치의 선과 행복을 바라지 않겠는가. 누군들 가난하고 악한 자리에 서겠는가. 사람이라면 근원적인 生의 질문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결코 누구도 특별한 신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겨울을 거의 끝내고 봄을 향해 걸어간다. 우리는 지금 생의 고통을 넘어 행복을 향해 걸어간다.

그런 과정 속에 "나"는 "너"의 삶에 희로애락을 관통하며 함께 손을 잡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관,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을 관통하면서 존재의 근원적인 깊은 내면의 질문에 난, 대답하려 하는 것이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생의 한가운데 햇살이 내려오는 초원에서 쉼을 쉬는 것과도 같다.





전철역 입구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장애인 한 분이 계셨다. 그는 일부 물건을 비닐봉지에 소포장해서 담기도 했는데 나는 주로 그에게 마스크와 커피를 샀다. 가을을 지나 한겨울 몹시 바람 불었던 그날, 퇴근길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자 손이 금방 시린 추위였다. 나는 가끔 그의 등 뒤에서 생의 슬픔을 곧잘 느꼈었다.


그날도 비닐봉지에 담겼던 마스크 값, 3천 원 종이돈을 드릴 때였다. 내 차가운 손이 그의 얼음송곳 같을 손끝에 닿았을 때, 나는 절망의 바닥으로 추락했다. 순간 내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수치스러웠다. 내 손에 쥐어진, 낡고 꼬깃하고 먼지가 묻은 비닐봉지에 고독한 내 눈물이 떨어졌다. 그때 생의 절망은 내 온몸의 혈관을 급속도로 얼어붙게 만들며 존재의 생명을 정지시킨 듯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나는 과거지향에 머물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열일곱 살 사색적인 관념에만 머무르기를 원치 않을 것이고,

이십 대 이데올로기적 세계관에 심취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며,

서른에 자본주의의 달콤하고 거대한 욕망 앞에 바벨탑을 쌓기를 원하지도 않을 것이며,

사십에 이르러 신학적 형이상학 나무에 올라 키 작은 삭개오처럼 구원을 향한 에덴동산의 열매를 탐닉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젠, 내 生이란 타자의 生을 통과하면서 그들 생에 한가운데 함께 살아가기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에 이른 생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내가 여기 지면들에 대체로 생의 허무, 고독, 쓸쓸함 등을 나열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랑을 대체하는 말이기도 했을 테지만 그것은 신학적 결과물인 사랑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려 한 것이 아닐 것이다. 생에 대한 허무, 고독의 정점은 존재의 결핍으로 때때로 사랑을 견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신학을 하려 했던 이유도, 존재론에 대한 마지막 질문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우주론 따위, 형이상학 따위 중요하지 않다. 실제적으로 내가 흘리며 공중에 흩뿌렸던 生의 고통은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저 멀리 지구촌의 모든 생명을 위한 고통의 흔적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사랑지상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를 끝까지 붙잡고 소멸시키지 아니하면서 그 의미를 도출하고 싶은 까닭이었다. 그래야 마지막 초원에서 눈부시고 찬란한 (생을 버텨온) "너"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나와 같이 생에 대한 고통을 지금도 느끼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을, 나와 다를 것 없는 동일한 "너"의 생을 함께 느끼며 통과하기를 원하는 것은, 먹기 쉬운 물컹한 감처럼 남들 보기에 내가 선을 향해, 착함을 위해, 무작정 베풀며 희생한다는 것이 아니다.


生을 관통하며 견뎠던 "나"의 고통에서 동일한 "너"의 고통을 바라보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추운 겨울날씨, 하루 생존을 위해 거리에 나와야만 했던 전철역 장애인 분에게서 난 "너"의 고통을 바라보았다. "내" 손보다 더 차가웠을 얼음송곳 같을 "너"의 손이 내 온몸 감각세포에 닿았을 때, 그 아련한 것들의 슬픔이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볼 사랑이었으며, 견디며 버텼던 서로 동일한 우리의 生이었고, 또한 우리가 마지막 죽음 앞에 바라볼 "낙원"이라고 말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손에서 느껴야 했던 당혹스러웠던 내 존재의 수치스러움과 그 날카로웠던 얼음 끝의 감촉은 내가 타인에 대한 生의 고통을 관통하지 못하고 다시 느슨해졌을 때, 하나의 영화 장면처럼 "너와 나의 마주 닿았던 손"을 기억하며 사는 동안, 나는 이렇게 되새김질할 것이다.


내가 네가 되는 것, 그리고 네가 내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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