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덧없어라 덧없어라
허공을 날아가는 새처럼 훨훨 날아라
나를 두고 머나먼 길을 떠난 사람아
덧없어라 덧없어라
파란 하늘 사이 구름처럼 흘러가라
텅 빈 공간처럼 인기척 없는 작은방 손잡이를 잡고 섰다. 통창쪽으로 주홍색 빛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방을 가로질러 천천히 창 앞으로 다가섰다.
그 옆으로 묵직한 필라테스 기구가 풍경을 가로막았다. 더 높은 곳에서 석양빛을 바라보고 싶어 바렐에 올라앉았다. 저 멀리 산등성이 아래로 하강하고 있는 석양이 눈부셨다. 손을 뻗었다. 하루가 사라지고 있는 찬란한 빛을 만져보고 싶었다. 주홍빛에 머문 태양이 산등성이 아래로 빠르게 내려갔다.
진정 아름다움 끝에, 황홀한 숨을 몰아쉬었다. 온통 세계는 주홍빛이다. 생의 아늑함이 몰려왔다. 오갈 데 없었던 상심은, 산 자의 슬픔을 토해내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나비처럼 날았다. 찬란한 외로움의 정점으로 진입하기 위해 음악을 열어 선반 위, 스피커의 볼륨을 충분히 높였다.
석양이 질 무렵, 주홍빛이 모든 존재를 물들 때면 자아는 저 깊고 깊은 고독의 심해층으로 내려가 유영한다. 그때 비로소 존재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삶. 지나갔을지라도 후회했을지라도 사랑이 떠났을지라도 그 모든 삶을. (슬픔이 담겼던 까만 눈망울. 풀잎 보다 더 여린 눈꺼풀의 움직임. 가녀린 손가락의 흔들림. 어찌해야 할 줄 모르던 눈물. 고통 속에 몸부림쳤던 흔적들. 더 내려갈 수 없었던 생의 밑바닥.)
이렇게, 한없이, 감각 끝에 닿을 수 없는, 석양도 산등성이도 우리의 생도 모두 찬란하고 눈부신 고독 속에서 헤엄을 쳐. 가냘픈 손가락 끝으로 만질 수 없는 부재한 그리움들까지 이렇게, 한없이, 때때로 우리 안에서 허무한 강물처럼 흘러가버려,
석양빛을 등지고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을 때, 주홍빛에 물들었던 나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선을 그리운 것들에 초점을 맞춘다. 벽면에 놓인 작은 테이블 의자 두 개가 비어있다. 그곳에 앉아 차를 마셨던 어머니. 그 공간은 부재한다. 가끔 그 의자에 먼지를 닦을 때마다 나의 실체를 허공에 날린다. 부재한 나의 어머니는 지금 책장 맨 아랫칸에 꽂힌 앨범 안, 봄꽃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시선을 책상 위 쌓여있는 책들로 옮겼다. 국어국문학 편입을 위한 책들. 그 중에 한 권을 빼내어 펼쳐 보았다. 좋아하는 새 책 냄새가 올라왔다. 책을 한 장씩 넘겼다. 글에 그리움이 묻어나자 눈물이 떨어졌다. 스쳐 지났지만 아련하게 내 생에서 끝나지 않을, 그리움만 남기고 가버린 사람.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문학적인 모든 감각을 끌어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었던 사람.
그 사람이 없었다면 내 안의 문학적 감각들을 견인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껏 살아왔던 삶이란, 세계를 향해 오직 눈앞에 있는 욕망의 허들을 뛰어넘느라 生은 눈먼 장애인 같이 고통스러웠다. 그 미세하게 흔들렸던 나의 문학적 균열들.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의 생을 내가 고통스럽게 통과하지 않았다면 나의 문학적인 것들은 끝내 묻혔을 것이다.
글을 써야만 했던 것을 가르쳐 준 그는, 내 가슴속 문학의 공명 관계로 이제 아련하게 남을 것이다. 마지막 산 자의 아픔을 품고 그의 길을 대신 가야 할 사람처럼, 나는 그 책을 아기처럼 가슴에 꼭 품어본다. 아직 미흡하고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사랑했던 사람들. 상실을 안고서. 쓰는 사람이 아니라. 꼭 써야만 할.
生을 통과했던 가장 아름다운 당신들의 소설이 되기를, 봄꽃이 필 무렵에 나는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