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나에게 걸어온다는 것은,

by sally

똑. 똑. 똑.


누군가 손마디로 두드리는 울림이 가냘프다. 잠시 후 사무실 문이 열렸다. 인기척 없는 발자국처럼 깡마른 여자가 (처음 신은 듯한) 흰색 운동화를 신고 걸어온다. 약간의 웨이브가 남은 단발머리의 30대 후반, 그녀의 까만 눈망울에 슬픔이 아련하게 고여있다.


고개를 내밀고 좌우를 살펴보니 파티션 안의 그들은 모두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요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나는 일어나 외부 세계에서 온 그녀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안내했다.


상담용 테이블 위 연분홍 히야신스꽃이 작은 화분에서 달큼한 향기를 고독한 자들 위로 뿜어낸다. 그녀에게서 바깥세상의, 냉혹한 n차 세계대전을 겪고 온 듯한 화염 냄새가 히야신스 꽃향기를 덮는다. 그녀는 가방에서 만년필 같은 녹음용 저장메모리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유일한 증거자료입니다."

나는 마치 그 작은 메모리 안에 n차 세계대전의 정보가 들어있는 양 소리파일을 컴퓨터로 연결해서 듣는다.

펑하는 소리. 아우성치는 소리. 북적대는 소리. 아이 우는 소리. 여자의 괴성.

"여기가 어디죠?"

나는 물었다. 그녀에게.

"장터요."

"무슨 증거가 유일하게 들어있죠?"

"내가 분명히 생선가게에서 고등어 세 마리 사면서 주인아저씨한테 5만 원권 지폐를 드렸는데 1만 원권 지폐를 받았다고 주장하셨어요. 때마침 옆에 뻥튀기 아저씨가 5만 원권 지폐 주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어요. 그 사이 우리 아이를 시장통에서 잃어버릴 뻔했다고요. 내가 5만 원권 지폐를 건넸다는 것에 대해 녹취자료를 만들어 주세요."


* 펑하는 소리(뻥튀기 소리). 아우성치는 소리(시장통 상인들 소리). 북적대는 소리(사람들 오고 가는 소리). 아이 우는 소리(잃어버린 아이). 여자의 괴성(아이 찾는 소리).




산다는 것의 중압감을 가끔은 우스갯소리처럼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듯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다툼과 논쟁에서 서로 사랑하며 품을 수 있는, 사람 간의 틈이 정직하고 따뜻한 온기로, 보름달 마냥 (꽉 찬 사랑으로 이 사회가 가득) 채워질 수 있다면 더 할 수 없이 좋겠다.


그녀는, 그는,

모두 나에게 향기로운 꽃이다.

그들은 내게 꽃으로 걸어온다.

존재는 곧, 향기를 품은 꽃이다.

꽃과 꽃 사이는,

다툼도 논쟁도 볼 수 없고

오직 아름다움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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