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 발악

by sally

얼마 전 옆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그 옆집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떡을 들고 서 있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인다.


- 안녕하세요,


목에 가래 걸린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양새에 살짝 긴장이 됐다. 가뜩이나 두 집 밖에 없는 15층에서 자주 엘리베이터 앞에서 부딪칠 텐데. 그녀는 거의 할머니들이 할만한 뽀글이 파마에 자주색 뿔테 안경을 코에 반만 걸치고, 안경 너머로 나를 쳐다보았다. 며칠이 지나자 그녀의 반격이 시작됐다.


쨍한 여름빛이 베란다에 내리쬐는 금요일, 12시 정오쯤에 그녀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오랜만에 월차 좀 내서 쉬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들이닥친다.


- 이름이 뭐예요?

- 저는 보통 "애들 엄마"라고 불러주는데 원래 이름은 윤리,라고 해요.


윤리? 이름이 뭐가 저래? 웃기네.

내가 윤리학을 공부하다 보니 20대 초반에 배워온 가치관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상살이에 지쳐 살다 보니 윤리라는 놈은 어디 온데간데없고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살았다.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단어가 윤리인데, 이름만 들어도 친해지기가 싫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알고 내가 언제 쉬는지 매번 그때마다 초인종을 눌러댄다. 그리고 좀 친해졌다고 내가 자주 다니는 필라테스를 등록하여 매번 아는 체했다. 결국 그녀는 언젠가부터 나를 졸졸졸, 따라다닌다. 아니 이 아줌마는 친구도 없나?


운동이 끝나면 항상 나더러 커피 사준다고 생색을 냈다. 거기서부터 일은 진행되기 시작했지. 그녀의 설교가 시작됐다. 그녀의 이름대로 윤리라는 과목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지, 기타 등등...

직장에서도 매번 상사한테 구구절절 잔소리 듣기 싫어서 귀마개를 꽂고 듣는 내게 설교를 한다. 윤리 아줌마로부터 도망가야겠는데 옆집이라 내가 들어가는 동선이 같다. 그녀를 피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러면 자기는 그렇게 윤리적으로 잘 살고 있대?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말 그대로 윤리적이었다. 하물며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윤리적이었으니까. 여기서 윤리의 정의를 한번 짚고 가자, 그녀의 윤리가 어떤 건지 알아야 하니까.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 진짜 피곤한 아줌마네. 너무 도덕이잖아.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는 매주 수요일마다 아파트 재활용을 수집한다. 나는 출근 시간에 쫓겨 미친 듯이 재활용을 섞어가며 플라스틱칸에 종이를 버리고, 종이칸에 플라스틱을 버렸다. 그 윤리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아니 이른 아침부터 뭐야? 집에서 놀면서 낮에나 버리지.


- 이렇게 버리시면 누가 또다시 정리해야 될 거 아녜요, 다시 정리하시고 가세요!

- 지금 내가 출근하는 길이라 쫌 바빠서,


그녀는 쏘아보면서 잘못 버린 재활용을 다시 꺼내어 들고 다시 버리라고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그때 화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미 그전부터 꾹꾹 눌러 담은 화가 폭발한 것이었다. 맨날 나만 쫓아다니면서 성가시게 한 것도 열받은데, 매사에 이래라저래라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사를 가고 싶을 정도로 사사건건 설교하고 간섭했다. 결국 지각하자, 하고 그녀와 대판 싸웠다.


- 당신 스토커야? 그만 좀 나를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괴롭혀요. 내가 어떻게 살든 당신한테 왜 매번 설교를 들어야 하는데?


그녀는 이런 내게 여전히 또박또박 윤리적으로 말했다.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고, 내가 잘못한 것들을 인정하라 했다. 잘못, 인정, 거짓말, 사과... 바르고 규칙적으로 질서 있게. 온갖 반듯한 내용이 다 들어있는 매번 그녀의 단어들이다.


사실 내가 잘못한 것들은 알지만, 내가 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그러한 것들이 용납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나는 윤리를 스스로 합리화했다 늘, 매번. 그렇게 살아야 세상 일에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내가 윤리와 경건에 대해 공부한 것만 따지면 10년은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윤리와 경건의 가치는 국을 말아먹었는지 죽을 쑤어 먹었는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만 <B사감과 러브레터> 나오는 그 사감처럼 나는 겉과 속이 좀 달랐던 것이다. 보기에는 반듯해 보이고 그럴듯하게 사람들에게 보일지 모르나, 정작 남이 안 볼 때는 도덕적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나는 결국 그 윤리와 관계가 틀어졌다. 그런 후, 몇 달 뒤에 그 윤리는 이사를 가고 또 다른 윤리라는 (이번엔 깡마른 50대 초반쯤?) 여자가 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윤리의 발악이다.





여름 끝 햇살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른 아침, 복도에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났다. 윗집에서 내려온 듯한 젊은 부부와 옆집의 중년 부부가 서로 소음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준점이 서로 각기 다른 시각일 것이다.


내가 오래전 호주에서 살았을 때, 출근길 아침 동네사람들은 서로 처음 본 사이여도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고 기차 안에서 내가 실수로 먼저 부딪쳐도 그들은 미안하다고 오히려 내게 말을 해줄 때가 많았다. 한 번은 내가 기차시간에 늦어 뛰어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와 내게 괜찮냐고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사람은 좋은 게 먼저 익숙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그런 문화에 젖어 있었던 탓인지) 한국에 들어와서 3년 동안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물론 외국의 문화가 모두 옳고, 좋다는 것이 아니다. 좋은 건 우리도 편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가 바쁜 현대를 살아가면서 도덕과 규범을 어떻게 날마다 지키며 살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하지만 조금만 내 뒤를 살피고 옆을 보다 보면 보인다. 내가 지하철에서 바쁘다고 사람을 우연히 툭 치고 내린다 하여도 그것은 그 사람에게 미안할 일인 거다. 그 사람은 정말 기분이 나쁠 것이다. 살아가면서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예의와 에티켓이 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마음은 온통 선인장 가시 같은 마음밖에 남아 있지 못한다. 내가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넘어진 사람에게 달려가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생활 문화가 우리에게 젖어든다면 적어도 우리의 생활이, 우리의 마음이 좀 더 밝아지고 편해지지 않을까 한다.


(가을아, 어서 오렴. 지쳐있던 여름 끝 우리의 마음 안, 고운 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