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하늘은 경계 없는 잿빛 구름과 마주했고 가을은 소리 없이 차창에 기대더니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하염없이 슬픔에 잠긴 것처럼 참으로 처량하다. 차창에 비친 어렴풋한 내 모습 또한 애수에 젖은 가을비를 닮은 듯하더니, 나는 이미 차창에 젖어 처량하여 감정 또한 서글퍼지는구나.
내 깊은 시름을 어디에 달래 볼까마는, 기차는 쉬지 않고 종착지 없이 계속 달리기만 한다.
삶은 무던히 눈물을 숨기고 우리에게 생의 언덕을 오르라 했는지 모른다. 존재는 생의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가슴에 안았기에 슬픔을 감추어도 눈물은 멈출 줄 모른다. 어디까지 우리의 생이 도달해야 눈물도 멈출까.
주르륵,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곧 내가 견디고 있는 생에 대한 눈물을 대신해 주는 것 같구나.
애수에 젖은 존재의 밑바닥은 무엇을 드러내려 한 것일까. 가끔은 붉게 타오르고 있는 여름빛 태양처럼 정열을 향해 가려했으나 감정에 목마른 사슴인양 아무런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창밖에 있는 시선을 거두고 뿌연 유리창에 집게손가락으로 몇 글자 생의 흔적을 남겨본다.
눈물, 애수, 희미한 ...
끊임없이 차창에 부딪치는 빗방울에 시선을 다시 모으다가 흔적을 지운다. 뚜렷한 감정의 경계 없이 마음도 차창에 비친 것처럼 흐릿해진다.
폭염에 지쳤던 것만큼 그동안 일에 지쳐 있었고 사회적 관계에서도 그물망처럼 얽힌 채 지쳐있었다. 어느 순간, 컴퓨터 전원을 끄고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생이 존재에게 친절하지 않을 때 나는 불현듯 춘천행 기차를 타고 삶의 길목에서 도망가듯 달음질한다.
김유정 역, 작은 시냇가에 멀뚱하니 앉아 있으면 생은 고달프게 짜내어 숨겨둔 눈물을, 그제서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