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은 흔적을 남긴다. 그 무엇으로 든지 흔적을 남긴다.
늦어진 퇴근길, 기차역에서 내려 처마 끝에 서니 빗방울은 도시의 조명등에 은빛 이슬처럼 아련히 내리고 있다.
가방에 있는 우산도 펴지 않고 그냥 걸었다. 분주했던 하루 끝에 서 있는 텅 빈 마음이 비를 맞고 싶어 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生의 발자국이 빗물에 쓸려 흔적이 사라진다.
아프다, 빗방울도 조금씩 굵어진다.
꽃이 피면 언젠가 시들어 말라 버릴 것처럼, 그렇게 흔적도 없이 가려는 것인가.
존재는 먼지가 되어 흔적을 남기지 않아, 하지만 生이란 건 붉은 꽃처럼 진하게 흔적을 남겨,
生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려 꽃잎 진 자리에 눈물 한 방울 흘려 놓는다.
빗방울은 내 마음을 아는 척 자꾸만 거세어진다. 그럴수록 더디게 발걸음을 옮긴다.
아프다, 너와 나의 生에 대한 흔적들이,
고개를 들어 어둠 속 하늘을 보았다.
얼굴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며 눈가를 지나 목을 타고 눈물처럼 흐른다.
아프다, 가슴속에서 올라오고 있는 너가 살아온 아릿한 生의 흔적들이,
가끔 혼돈스러울 때가 있어,
너의 生이 내게 닿은 건지, 다른 生이 내게 닿은 건지,
골목길에 숨지 말고 확연한 너의 흔적을 내게 보여줘,
내가 알 수 있는 너의 生에 대한 흔적을 보여줘,
"아무런 감정조차 느끼지 말고, 내게로 다시 돌아와,
그렇게 말없이 가버리면 너무 슬프잖아."
너의 生의 흔적을 붉은 꽃잎 진 자리에 다시 피어봐, 내 生의 눈물도 함께 말이야.
새순이 돋았다고, 봄이 왔다고 너의 흔적을 내게 말해줘, 그 예전처럼.
(하루의 끝에서 아프다 한다, 너의 生의 흔적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