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위암 말기, 하늘 끝으로 올라가 버린 사랑하는 친구를 위한 노래)
生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어요, 붉은 심장은 언제나 사랑의 꽃씨를 품고 있어요. 꽃씨는 민들레 홀씨처럼 그리운 사랑을 찾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죠.
애잔한 그리움은 세월에 묻혀 푹푹 찌는 여름날에 쉬어꼬부라진 산나물처럼 질척 거리거나 또는 간헐적으로 타는 듯한 그리움은 척추를 타고 쭉 내려가다가 영롱한 진주목걸이가 갑자기 툭, 끊어져 흩어져 버리거나, 生의 그리움은 늘 그렇게 거미줄에 매달린 것처럼 빈곤하거나 아슬하게 살아가요.
삶의 무채색 공간에서 애절하게 웅크리고 흘렸던 눈물은 정처 없이 갈 곳 몰라 허공을 맴돌다 그것은 하늘로 올라가 먹구름이 되어 다시 내 앞에 비를 내렸어요. 그녀는 항상 꿈에 나타나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같이 가자 했었지만 난 그녀의 손을 뿌리 쳤어요. 그녀는 그렇게 공간의 구분 없이 가끔 벽으로 사라졌거나 또는 침대에서 뒤엉킨 줄에 일그러진 얼굴로, 손톱으로 피가 나도록 하얀 병실의 벽을 긁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넌 언젠가부터 그렇게, 무섭게 날 찾아오지도 않았어. 그때는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렇게라도 너가 내게 와 주었으면 하는 거야. 나도 이제 너에게 갈 날들이 많이 남지 않았거든. 그래서 너와 함께 손잡고 햇살이 눈부신 봄날에 광화문 거리를 걸었던 그리운 시간들을 함께 하고 싶었던 거야. 너 없는 광화문 거리는 아무리 혼자 걸어도 겨울 하늘처럼 시리고 외로웠었거든. 차마 내 발길은 너 없는 그곳을 향해 갈 수도 없었을 거야.
가을 햇살이 창을 뚫고 눈부시게 병실을 비출 때 넌 너무 고통스러워 침대 옆 하얀 벽을 손톱으로 피가 나도록 긁으며 울부짖었어. 그리고 며칠 뒤 가느다란 눈조차 뜨지 못했던 너의 가련한 얼굴을 보면서, 스물아홉 내 나이, 이미 生에 대한 절박한 염세론이, 호흡할 수도 없을 만큼, 창자 속에 꽉 찬 가스처럼 부풀어 있었지.
너를 보내고 나서 너의 흔적을 텅 빈 광화문 거리에서 찾아 헤매기만 했어. 그곳에 가면 너가 꼭 나타날 것만 같았거든. 늦은 밤 수업이 끝난 후 너와 난 손을 잡고 경복궁역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 걸었잖아. 그런데 우리의 生은 꼭 잡은 두 손처럼 그리운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 그래서 난 아직도 차가운 광화문 사거리에서 너와 숨바꼭질을 하고 있잖아.
그 거리를 가끔 상상해 봤어. 나는 하늘 위에서 아주 넓은 시선으로 광화문 거리를 내려다보는 거야. 그러면 너와 나의 그리운 기억들이 그대로 보이게 되거든. 여전히 그 거리엔 열일곱 살 너와 내가 두 손을 잡고 걷고 있더랬어. 아마도 내가 지상에 존재하는 한 그 거리를 우린 계속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스물아홉 가을, 차가운 달빛이 창가를 비추던 새벽녘, 너의 마지막 호흡이 사라지던 날 이후로 삶이 참 막막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곤 글도 써보지 않던 내가, 너에 대한 짧은 소설을 써서 어느 출판사에 못다 한 숙제처럼 제출하기도 했었어. 그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슬픔이 가득 차올라 널 보낼 수가 없었던 것 같았거든. 여전히 지금도 널 이리 보내지 못하고 대지 위에서 안타깝게 서성거리고 있잖아. 너와의 마지막 기억은 우리 걸었던 광화문 거리와 너가 살았던 세검정 거리에 여전히 멈추어 있을 뿐이야.
어느 이른 봄날에 널 찾으러 광화문 거리에 갔었어. 너의 흔적이 그곳에 조금은 남아 있더랬어.
앙상한 나뭇가지가 마치 마지막 너의 모습처럼 쓸쓸하게 날 반기고 있었어, 그리곤 너의 웃음소리가 광화문 사거리 봄햇살 속으로 울려 퍼졌지. 난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널 찾았어, 그때 너가 나타나서 따뜻한 햇살로 내 시린 가슴을 덮어주었거든. 순간 병실에 있던 네 가냘픈 손가락의 촉감이 느껴졌어. 난 그때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 거야. 너를 보아도 난 만질 수가 없던 거였어. 허공에 너가 맴돌기만 하고 만져지질 않았어.
4월이면 이제 우리 앉았던 3층 교실 창가에 아련한 목련꽃이 피어오르겠지. 창가 바로 옆 햇살에 빛났던 희고 고운 목련꽃이 고개를 우리에게 내밀면 너와 나의 그리움은 절정을 이루었어. 하지만 넌 해마다 채 피지도 못한 목련이 되어 하늘에 눈꽃송이처럼 그렇게 나를 만나러 가끔 내려왔을 뿐이야.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너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은데 너에 대한 슬픔이 차곡차곡, 겹겹이 천 년 동안 쌓여있던 탓인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가슴을 누르고 슬픔을 눌러도 애절하게 늙어버린 내 심장엔 불 지핀 볏짚에 스멀 피어오르는 연기에 그을려 매운 눈물처럼, 이미 그 속에 아련히 스며들었어. 이제서 소주에 그리움을 깊게 담가 희석하고 나서야 내 아픈 귀로 광화문 거리에 서서, 교실에서 활짝 웃던, 너의 웃음소리를 찾으러 가고 싶구나.
어쩌면 광화문 거리에 너가 천사가 되어 내 소망보다 먼저 올 거면, 나를 알아볼 수가 없을지도 몰라. 너 없었던 땅의 시간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처절하게 나도 수십 개의 신대륙을 발견하였거든. 상처들은 곧 내 얼굴을 슬픔의 연장 도구로 마구 깎아 버리고 흐트러 놓았어. 내 얼굴은 이제 상해 버려서 너는 모른 척 내 곁을 스쳐 지나갈 거야.
열일곱 살 난, 초여름날 연신내 뒷동산에 앉아 한 포기 풀처럼 살고 싶다 했었지.
열일곱 살 넌, 늦가을날 세검정 뒷동산에 앉아 겨울 여행을 가자 했었지.
우린 아직 서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그 약속은 너가 있는 곳에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어. 나도 이제 그리운 너에게 곧 갈 거잖아. 너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말이야. 그곳에서는 너의 얼굴도 내 얼굴도 서로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곳에서는 열일곱 살, 햇살 가득한 눈부신 봄날,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앳되게 웃었던 것처럼, 그렇게 천사가 되어 봄꽃처럼 화사하게 둘이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을 거니까.
(학교 앞 그리운 햇빛이 비치는 골목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