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제도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달려가나?
필자는 현재 미래를 위한 발돋움이라는 명분 하에 일을 그만두고 직종변경을 위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생겨 글을 쓴다.
혹시라도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이 지구에 한명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If, somebody can exist in the world. (영어회화 학원에서 배운거 써먹기.)
일단 곧 잠에 들어야하니 간단하게만 써야겠다.
1.한국에서 유독 높은 청년층의 자살
한국사를 배우면서 신분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기에는 태어나자 마자 인생이 결정되었다.
지금도 뭐 금수저니 흙수저니 부모복이 많으면 인생이 순탄한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나마 자기 손으로 노력해서 쟁취할 수 있는 21세기에 왜 자살이 많을까?
사실 그런 생각도 해봤다.
지금이 원시시대라서 하루 먹고살기 바쁘고 짐승과 싸워서 이겨내는 것이 우선이라면 자존감이니 내 정체성이니 할 겨를이 있을까?
경영학에서 배운 매슬로우 욕구이론이 생각났다.
현대사회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정도는 적절하게 채워지는 것이 기반이다.
그러나 애정의 욕구. 더 나아가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까지 현실에서 만족하고 한단계씩 진보하지 못하여 좌절감에 자살율이 높은게 아닌가 싶다.
한단계씩 올라갈수록 진보에 초점을 두고 발전하는 것이 아닌 내 등 뒤에 놓인 절벽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저 높은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니 자신의 몸보다도 높은 역경의 벽을 뛰어오를 힘이 없어진게 아닌가 싶다.
그 상태에 존재하는게 아니라 그저 포기해버리는 것 아닌가 싶다.
2.장보고의 신분제 저항
다들 장보고 라는 인물을 아는가?
필자는 어릴 적 모친을 따라 간 장보고식자재마트 라는 상호명을 통해 가장 가까이 느꼈던 것 같다.
이번 한국사 강의를 통해 장보고 삶의 흐름을 알고나서 내가 했던 고민들이 조금 용기가 없었나 싶기도 했다.
장보고는 태어나자마자 흙수저였다.
잘은 모르지만 신분제가 관습인 시대에 태어났다면 현대로 비교했을 때 반지하도 아니라 비닐하우스쯤에 태어난 격일까.
삼국시대라고 뭐 다를까 만약 기질적으로 포기와 체념 이 강했다면 여늣 삶을 저버린 청년들 처럼 모든걸 포기해버릴지도 몰랐다.
장보고는 자신이 활만은 기가 막히게 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뭐 어쨌는가.
지금이라면 수능 만점을 받았을 때 당당하게 의대를 걸어들어가겠지만 만약 의대 로스쿨 등등 전문직을 위한 입학조건이 외국조기유학 3년이상이라면? 수능 만점을 받아도 들어가는 것은 꿈도 못꾼다.
그래서 장보고는 바다를 보고 생각한다.
내가 저 바다를 건너가 새로운 세상에서 삶을 시작하리라.
물론 바다를 건너가는 것에 있어 지금 처럼 아 비행기 이코노미 끊고 어떻게든 장시간 비행을 버텨보리라. 이것도 아니고 막말로 태풍에 휩쓸려 죽을 것도 각오하고 떠난 것이다.
도전하여 죽거나 새로운 삶을 살거나.(필자는 이 강렬한 도전정신에 놀랐다. 요즘의 나는 현실에 너무 치인 탓이 항상 모든 일에 방어적인 태세만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난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활 쏘는 실력으로 장군이 되어 무역업을 하여 떼돈을 벌었다.
최태성 선생님의 말을 쓰자면 요즘으로 치면 삼성가 급이라고 한다.
이러한 도전력이 참 인상적이었다.
스펙은 상향평준화되고 경쟁을 더욱이 치열해지는 이 한국사회에 그저 하루하루 살아만 가는 청년들 또한 너무나 멋진 존재들이다.
나는 인간이 살면서 이름 한번 남겨야한다거나 큰 공을 세우거나 한번 살다가는 인생 끝장을 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그 두려움의 발산처를 다른 곳으로 보내보는게 어떤가.
두려운게 아니라 이정도는 일절 상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태풍에 휩쓸려 죽나 내가 목매달아 죽나 똑같다면 태풍에 휩쓸려서 물고기랑 하이파이브 하고 죽는게 낫다.
현실이 두려워, 뒤쳐질까봐, 남이 한심하게 볼까봐, 남들이 다 다니는 직장하나 번듯이 못다녀서.
본인에게 미운 마음이 들고 도망치고 싶다면.
도망쳐라.
이승에서 발을 떼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말리지 않겠다만 조금이라도 죽음이 두렵다면 그저 매일 숨만 붙어 살더라도 살아라.
인생은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무조건 적인 행복만 있을 순 없다.
넘어져서 아프더라도 까진 무릎이 나았을 때 걷기 편해져서 행복할 수도 있고
일이 힘들었지만 퇴근해서 돌아온 집에서 차가운 물 한잔 꺼내마시는 것에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깐 인생에 한 획을 그으려 말고 장보고가 죽을 각오로 배를 타고 건넌 것처럼 그러한 노력을 희미한 불씨로 살아가려는 정도만 하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세계의 1등이 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그 성공만이 노력의 역치가 아니다.
내가 오늘 밥을 해먹는 것, 설거지를 미루지 않는 것, 영어과제 하는 것 모두가 나의 노력이다.
3.시대가 진보할 수록 인간에게 허락된 자유
지금이 전시 중이라면 내가 이렇게 태평하게 뉴에이지 들으며 나만의 철학을 쓸 수 있을까?
소변 한번 볼 때도 온 세상 귀를 기울이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릴 것이다.
점심에 나온 밥에 고기가 잡내난다고 안먹고 버릴 수 있을까?(참고로 필자는 잡식성이기에 남이 맛없다는 것도 먹는 것이라 이건 예시이다.)
없어서 못먹는 음식일 것이다.
지금은 전쟁도 없고 너무도 평온한 시대이다.
누가 나를 잡아끌고 가서 무거운 돌을 옮기라고 채찍질 하지도 않고
신분이 천하다고 하고 싶은 일도 못하게 하지 않고 옷도 정해서 입으라거나 하지도 않고..
선생님이 그러신다.
시대가 진보할 수록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 또한 진보할 것이라고 한다.
난 인간의 삶이 더 편안해지는 것에만 중점을 두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써 살아남는 것에 더 치중하면 좋겠다.
제목 그대로.
연명하는 것에 초점을 두면 좋겠다.
내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기쁠까?
내가 의대에 합격하면 기쁠까?
내가 재수없는 동기보다 빨리 승진하면 기쁠까?
내 거래처가 나한테 머리를 조아리면 기쁠까?
아니...
그런 것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몸에 베인 것에 안도감이 기쁨으로 나올 뿐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뉴욕도시에서 20일을 굶어 당장 아사하게 생긴 사람에게 의대 합격증과 식사 둘 중 고르라하면 식사를 고르지 않을까?
당장 손목의 동맥이 잘린 사람에게 30초안에 응급이송 텔레포트 와 변호사 합격 둘 중 고르라고 하면 뭘 택하겠는가?
죽으면 다 끝인 거다~
인간이 사는 데에 있어 필요한 것은 저 5대 욕구중 첫번째 만 충족되어도 살 수 있다.
사냥하고 먹고 자고 또 일어나서 사냥하고 먹고 자고. 사냥 실패하면 굶고.
인간이 진보하면,
죽음으로부터는 조금 더 안전하지만
의 식 주 만은 본인이 자연의 그대로에서 해결하는 것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면 좋겠다.
필자가 실제로 원시랜드 라는 사업아이템을 구상하였으나
원시랜드는 말 그대로 산 에서 니가 나무로 집을 짓든 땅을 파며 진흙을 만들어 짓든 해야하는데
랜드 내 안전 사고 발생 시 온갖 소송에 휘말릴 것 같기도 하고...
사업기획서를 제출하여야 투자하겠다는 말에 잠시 꿈을 접은 상태이다.
여튼 그렇다.
누가 나보고 '짐승처럼 살고 싶다는 거네.' 라고 하던데
의 식 주에 기반된 삶에서 인간 존재의 1차원적 행복을 중점으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
이해가 안간다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짐승보다 더 천하게 사는 행태도 현대사회에 널렸는데 내가 보기엔 원시랜드 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가치있어보인다.
이상 사업계획서 제출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