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서 바꿀 수 있는 것 들.
먼저 서두는 그냥 아무렇게나 시작하겠다.
난 퇴사한지 3달이 된 사회초년생이다.
신기하게 4년제를 졸업하고 일을 이년넘게 했는데도 아직 젊은 편이다. 신기하다 체감은 힘든 시기를 너무나 많이 지났는데 아직도 난 살아갈 시간이 많다.
사실 사회인으로서의 젊은 나이와 대비되게, 난 사춘기를 무척이나 오래 겪었다.
그걸 며칠 전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동안 앓았던 것들이 다 사춘기였다고 칭할 수 있는 것조차 이제야 알았다.
난 직장인이 되고서 너무나 괴로웠다.
그 문제들은 주로 인간관계, 혹은 자아 인정욕구, 가족으로부터의 미충족된 애정과 관심들.
아직 미해결된 문제들이 마음 속에 너무도 많아서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방법을 찾아서 실천을 해봐도
내가 잘 하고 있는지 확인항 방도가 없으니 더 괴로웠다.
오죽하면 자기혐오가 너무 심해져서 난 망가진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쓰레기‘라고 칭하기엔 아이러니해서.
망가진.
속부터 망가져서 건물이라 치면 기초공사부터 날림된 30층 짜리 겉만 번지르르 오피스텔.
퇴사
그래서 일을 그만뒀다. 그대로 다니다간 병원 문 잠그고 다 패죽이고 잠적할거같아서.
다행히도 난 내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해결한다는걸 아는 수준이라 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전공한 것(뭐 그다지 로망을 가지고 큰 노력한건 아니라 소중하지도 않지만)을 버린 것에 대해서도 혹자는 대단하네요 한다.
맞다 대단하다. 난 그 결정을 하기까지도 무척이나 괴로웠다.
직장을 자주 옮긴 것. 일을 그만둔다는 것.
내가 남에게 인정 못받을까봐 패배자로 보일까봐, 남이 세운 기준에 내가 부합하지 못하니깐 날 스스로도 인정 못할까봐서 그냥 죽어서 이 괴로운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간단히 생각하면 니가 패배자라 생각하면 패배자가 되면 그만.
그렇게 그 일이 좋으면 니네끼리 다 해먹고 3대 니 자손까지 꼭 물려줘라 는 생각으로 난 나왔다.
내가 도망친다고 해서 내 인생은 망하지 않는다.(망가지지 않는 것과는 다름)
자격증
일을 그만두자마자 몸이 가만 있는게 허했다. 어디서 일하고 소속되어 필요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일단 제일 사무에 기초적인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필기였는데 강의가 나름들을만 했다. 어떤 날은 정말 졸라게도 듣기싫어서 안듣고 탱자탱자 논 적도 있다.
그러디 세번만에 필기를 땄다.
합격 소식에 눈물난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기에.
취미학원
그리고 모은 돈으로 뭘 하고 놀아야하나 고민 중에 그냥 영어학원도 등록했다.
한달에 30만원 넘는 돈.(지금은 레벨과 강슨 일수가 올라 한달에 70정도)
그리고 기타학원 월 15.
오히려 일할 때보다 돈을 더 잘 쓴다.
월에 200은 쓰는 거같다. 미친놈이다 아주.
이상하게 직장인일 땐 더 돈에 집착했다.
뭐 돈을 어거지로 아껴가며 살 성미도 아니라 그다지 쪼들리게 산 건 아니지만 달에 120을 저금할 때와 150 160을 저금할 때와 그 달의 뿌듯함이 달랐다. 아마 자괴감을 참아가며 하는 일에 보상을 저금으로 생각했단 모양이다.
근데 이렇게 나에게 돈을 써보니 오히려 드는 생각이 있었다. 왜 나는 일 다니면서는 이렇게 나를 위해 돈쓰거나 학원 다닐 생각을 못했을까.
그땐 학원비 월 15만원이 크게 느껴져서 기타, 피아노 학원도 다니질 않았다.
다음엔 직장인이 되면 저금은 덜하더라도 꼭 취미학원을 다니리.
아마 피아노나 기타 학원을 다녔다면.. 그 기간을 조금 더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어 학원은 환승1번 한시간 거리인데 주 두번 나갈 땐 괜찮다가 주5번이 되자 꽤 고난이다. 게으름병이 돋아 컴활 준비를 안하고 있다.
영어학원 좀 다니니 제법 영어로 말을 잘한다.일단 Do 와 Am의 차이를 알게되었고 버벅이지만 문법부터 잡고 시작한다는 기초공사의 튼튼함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상담
직장동료(라고 부르기엔 그 어떤 존경도, 동집단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의 부조리에 갈수록 빡이 돈 나는 정신과에 한번 가봤다.
사실 기대 안했다. 정신병자처럼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러렴 어떠리 다시 안볼 사람인데 싶어서 편하게 이야기했다.
중심가의 정신과였는데 국가기관에서 추천해주어서 가게되었다.
넌 미친놈이군요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그분은 정말 평온히 이야기해주셨다.
‘사람들의 반응을 공격으로 받아들여서 자기방어적으로 공격적인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난 어쩌면 그 말에 큰 위안을 받았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뭐 그런게 아니고 해결방법을 알려주니 너무 좋았다. 힘든건 내가 잘 아니까 굳이 공감 안해줘도 안다. 차라리 해결방법을 주는게 더 감사하다. 그리고 그냥 초진이고 상담 예약도 아닌데 나와보니 한시간을 넘게 상담해주셨더라. 생각보다 대기가 많아서 나 때문에 대기하셨을 분들에 죄송하였지만 그토록 누군가에게 지혜를 빚진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약을 먹어야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상담치료를 권해주고 끝이었다.
나와서 보니 명문대 박사까지 따셨더라. 난 학벌로 그 사람의 일상 행동을 높이 평가한 적은 없지만 이제껏 상담한 경험으로는 상담지도사1급 혹은 의대 뭐 그런것과 관계 없이 심리나 상담관련하여 박사학을 딴 사람은 정말 상담의 깊이사 다르기때문에 상담 사설 센터를 고르려면 학력을 꼭 보길 추천한다.
이전에 서울서 20대이지만 청소년의 마지막 인정 카운터 나이에서 시립 지원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10회쯤 받았는데 내 힘든 점? 생각을 털어놓은 기억만 있고 뚜렷한 분석이나 평가, 도움을 받은 적은 희미해서 상담시도에 주저했다.
한번에 거의 10만원을 써야하는데 말짱 도루묵이면 어째? 심지어 사설 상담센터들은 학력 기재도 잘 안해놓아서 믿음이 안갔다.
내가 왜 그리 타인의 행동에 쉽게 분노를 느끼는진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놈들이 바뀌진 않아서 나도 제대로 치료받지 않은 상태에 분노를 잠재우긴 어려워서 퇴사했다.
사실상 상담을 받고 싶어도 그놈의 *같은 주5일 근무와 랜덤휴무, 무 연차에 상담을 받고 싶어도 일때문에 못받는 순간 너무나 슬펐기에 오히려 퇴사는 잘 된 결정이었다.
가족상담
시에서 주관하는 센터에서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엔 ‘나’ 라는 사람이 가진 고민에 대해서만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사회를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어려움. 낮은 자존감. 자기비하. 공격성 등등
하지만 첫 회기에 난 그만둘까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한참 전엔 손을 놓아버린 가족들까지 끌고 와야하는 것이었다.(절연의 의미가 아닌, 그냥 우리 가족은 이모양으로 살 수 밖에 없구나 그정도 의미.)
내가 선택한 가족이 아닌데 왜 내가 그걸 고려해야하죠? 싶었다. 어차피 시에서 주관하니 믿을 만할 것이고 비용도 덜 부담되니 다녀보자 싶었다.
몇 회할 때 까지도 의무상 가는 것이지 상담선생님께서 해주는 말이 반고리관만 탁 치고 반대쪽 외이도로 세어나가는게 느껴졌다.
그러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가족센터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그 프로그램은 짧았지만 그 짧은 네시간 가량이 내 생각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었다.
어떤 과정이었는지 모두 다 기술 할 순 없지만. 난 그 시간 이후로 우리 가족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고로 나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타, 영어와 같이 기본기가 생긴 것이다.
난 그 동안 살면서. 부모를 존경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딱히 가족을 사랑한다는 감정도 못느꼈고 그래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부모도 사랑하지 않는 이기적인 새끼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하지만 자기방어적으로 자조적은 말으로 바꿔하곤 했지만.)
하지만 내가 작고 짧은 시선 속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상담선생님들이 가볍게 언급한 것 만으로도 난 내가 보지 못한 모든 것들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 같다.
난 퇴사를 하면서 혼자 미국여행을 갈 생각도 하고 영어를 배워서 훌쩟 딴 나라 가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사실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운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이제 나를 인정하고 가족을 붙잡지 못하는 시간에 흘려보내기 전에 더 행복한 시간안에 가둬둘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기쁘다.
+ 나같은 경우는 그동안 사춘기라는 짧은 세단어 라는 방패 하에 오랜 기간을 행패부린 것들에도 묵묵히 지금까지 곁에 있어준 가족들이 있기에 내가 더 빠르게 반전되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어떤 작가의 산문 중에 그런 문장이 있었다.
소중한 것들은 나를 살게 하기도 하고 가끔은 어렵게 하기도 한다고.
난 부모님의 무뚝뚝함에 상처받아왔지만 반대로 나의 과오를 용서하는 순간에 그 긴 시간동안 상처받았음에도 ‘그래‘ 라는 한 마디로 내 사과를 종결한 부모님에게 존경을 느끼게 되었기에 누구나 인생에서 저 문장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상담 이후로 마치 정제된 영혼이 된 기분이다. 공격성이 낮아지고
또 직장을 벗어난 탓에 다른 환경에서의 사람을 만나 인간의 우호적인 면모도 많이 보게 되었다.
뭐 어차피 이 글 또한 정보를 주기 보다는 내 인생을 기록하는 것의 목적이 강하니 도움이 될련지 모르겠다.
다만 나 처럼. 자신이 망가졌다고 느끼는 사람에겐 주어진 환경, 조건 불문하고 심리상담(믿을 만한 이력을 사진 상담사에게) 을 해보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그럼 모두 will be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