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엄마를 찾지 않았나
교문 앞, 하교하던 나를 누군가 불렀다.
이모였다. 엄마가 연기처럼 사라진 이후 몇 달 간 우리를 돌봤던, 왜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보내야 했던 이모. 누가 보거나 말거나 뛰어가 안겨 울면서 하소연했어야 할 것 같았지만, 나는 담담하게 그러나 조금은 반갑게 이모를 불렀다. 이모는 근처 중국집에 날 데려갔고, 마치 밀린 빚을 청산하듯 아이가 다 먹을 수 없을 음식을 시켰다. 지내는 건 어떠냐, 동생들은 어떠냐...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엄마가 어딨는지는 이모에게 묻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이모가 답해줄 수 없을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급하게 헤어졌다. 몰래 만나는 걸 서로 알았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가야 해"라는 나에게 이모는 남은 음식을 싸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 도시락통에 중국음식을 싸가면 뭐라고 변명을 할 것인가. 그럼에도 이모는 꾸역꾸역 음식을 싸줬다. 결국 도시락통을 정리하던 사촌언니와 고모는 "이게 어디서 난 거냐"고 나에게 물었고, 나는 얼토당토 않은 변명을 해야 했다. 당연히 먹히지 않았지만 나는 이모가 왔다 간 사실을 실토하지는 않았다. 서로 알면서도 대충 모른척 해주는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엄마는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지, 왜 소식을 전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누구에게도 그 마음을 털어놓거나 투정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극심한 외로움과 소외였다.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성적은 곤두박질 쳤고, 모든 것은 엄마를 다시 만날 때까지로 유예한 것처럼 무엇을 하지만 그 무엇에도 진심이 아니었고, 현재는 없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 소설 '오싱'을 밤마다 읽으며 울었다. 그러던 중에 학교에서 군대로 위문편지를 보내는 미션이 있었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보낸 편지의 답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의 편지를 받은 어느 이등병의 답장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지만 따뜻했고 정성스러웠다. 답장에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11살이 보내는 편지에 정성것 답을 보내는 적어도 19살 이상의 군인이라니. 나는 지금 그가 누군지 안다면 찾아가 큰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 어린 아이가 홀로 울고 있을 때 위로를 준 단 한 사람이었다고. 그 답과 답의 답이 3-4번 오갔을까. 어느날 편지를 발견한 고모는 아주 불순한 생각을 했다. 나이 많은 남자 군인과 어린 여자아이 사이에서 무슨 연애 감정이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걸가. 아니 정확히 그런 말을 하며 길길이 뛰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은 처음이었다. 편지는 중단됐다.
나는 이모가 우리를 돌보던 때는 그래도 엄마가 곧 올 거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이모마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아빠도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고모집으로 우리를 보냈을 때는 더더욱. 모두가 엄마에게 적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엄마의 안부를 물을 수도, 왜 우리가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도 물을 수 없었다. 그저 숨죽이며 지내는 수밖에.
어느날, 고모와 사촌언니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내가 집에 있는데, 그들은 문을 닫으면 아무도 그 말을 들을 수 없는 줄 알았는지 그들만의 은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말은 이거였다. "변호사가 그러더라고. 애가 11살이면 아직 어린데, 아마 더 컸으면 자기 엄마를 감시하려고 했을 거래."
그 말을 문 밖에서 우연히 들었을 때, 나는 너무 큰 죄책감을 느꼈다. 그 전까지는 엄마를 죄인으로 몰고, 그런 엄마를 우리와 떨어뜨려 놓으려는 사람들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이미 "다시는 엄마가 그렇게 (빚을 지도록) 못하게 해야지, 그 전에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그게 엄마를 죄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든 나는 1년이 지나는 동안, 엄마를 온통 그리워하면서도 엄마가 어디 있는지, 왜 오지 않는지를 묻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면 참으로 이상하고,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왔다.
이모가 나에게 와서 "엄마 보러 가자"고 말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