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구원하소서 14

기만, 배신... 그리고 불신

by 영원

내가 아빠와 고모를 믿지 못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하나 있었다.


우선, 아빠는 엄마가 우리 가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몰랐다. 엄마 때문에 생활을 유지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커가고 있는데, 아빠는 그 모든 것의 소중함을 몰랐고, 그러니 우리에게서 엄마를 빼앗아갔다. 단지, 자신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그것도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엄마는 매일 세끼를 아빠에게 해바쳤다. 아침을 챙겨 먹여 보내면, 점심은 집 근처에 약국이 있었기 때문에 밥을 해갔다. 작은 쟁반에 밥그릇, 국그릇, 그리고 반찬 종지들. 아침에 먹었던 반찬이 아니라 매일 새밥, 새국, 새 반찬을 해서 그릇에 담아 보자기에 싼 그것을 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국으로 종종걸음했다. 그러다 아빠 마음이 안좋거나 싸우기라도 한 날에 아빠는 그 밥 보자기를 풀지도 않거나 다른 사람을 줘버렸는데, 엄마는 내가 들고 가면 그나마 밥이라도 먹을까 해서 내 손에 들려보내는 날도 있었다. 그걸 들고 약국 앞 횡단보도에 서 있는 나를 아빠는 손짓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고,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모대해서는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한참 어린 아이들이 믿고 엄마 대신으로 기대고 의지하기에는 직감적으로 마땅치 않은 사람이었다.


고모집에서 살던 어느날, 우리 세 남매만 집에 남겨진 날이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나는 집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찾을 요량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다 거실 장식장에서 편지 하나를 찾았다. 엄마가 고모에게 보낸 편지였다. 고모집에서 산 지 2-3개월 쯤 됐을 때였다. 아마 무엇도 납득하지 못했던 내가 무의식중에 한 일이었을 것이다.


편지에는...이미 엄마와 아빠의 '이혼'에 대한 말이 여러 번 오간 듯,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 세남매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건가,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건가.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걸 우리한테 말도 안 했다고? 이런 편지를 이렇게 뜯어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내던져뒀다고?


한동안 멍 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실 벽에 걸린 십자가 아래서 기도하는 일이었다. (고모는 천주교 신자였다). 동생들이 옆에 있거나 말거나 나는 엎드려 엉엉 울면서 기도했다. 제발, 엄마 아마빠가 헤어지게 하지 말아 달라고, 우리를 엄마랑 같이 살게 해 달라고. 그냥 무조건 빌었다. 시키는대로 다 하겠다고 했다. 뭐든지 가져가라고...그건 내가 신 앞에서 내 모든 걸 걸고 가장 간절히 바친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일 것이다.


뜯지도 않은 편지봉투를 아주 조심스럽게 뜯고 최대한 뜯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해뒀지만, 아마 그 서툰 솜씨는 들켰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마음이 그들에게서 떠나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보다 더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11살이 지나는 그 겨울, 최악의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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