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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구원하소서 7

by 영원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지하 교실, 아이들 키 2배는 넘는 높이의 창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따라 눈을 돌렸을 때, 한껏 허리를 굽히고 환히 웃으며 나를 보던 엄마의 얼굴을. 막내 동생은 업고, 둘째의 손을 잡고, 내가 수업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학교를 찾아왔던 엄마다.


엄마에겐 자식, 특히 첫 정인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다. 저것 때문에 내가 살지, 저 예쁘고 영특한 것 하나 잘 키워내면 내 삶의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아마 엄마에겐 삶의 동기 전부였을 것이다. 아주 처음, 나를 받아 안았을 때부터 그때도 그리고 지금까지, 어쩌면 나는 결혼 뒤 맞닥뜨린 절망의 순간들 중에서 가장 처음 주어진 엄마의 구원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 아이를 잘 키워 덕을 보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누구보다 사랑받았던 한 사람이 결혼과 함께 마주친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현실에서, 그렇다고 도피도 용납되지 않는 엄마에게 나는, 처음 "그럼에도 다시 살 이유"였다.


다시, 지하의 교실에서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던 그 창문, 그리고 막내를 업은 채 발치쪽에 난 창문으로 한껏 허리를 구부린 엄마가 나를 보며 웃은 그 웃음. 그때에 나는 겨우 가나다를 알고 이름자나 쓰는 상태로 입학한 주제에 "교과서의 점선 그대로 색연필로 선을 그어볼까?"라는 지루한 주문을 견디지 못한 상태였다.


그 지루함 끝에 무심코 바라본 지상의 창문, 그리고 엄마의 얼굴. 지금 생각하면, 어쩌면 나는 그 한 장면에 매료됐던 것 같다. 그 온 존재를 다 한 웃음에, 그 구부림에, 그리고 그런 엄마를 향한 나의 안심어리고 기쁜 얼굴. 다시는 내가 그 모습을 잊지도, 외면할 수도 없었던 장면이다.


나는, 사는 내내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를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내 삶의 각 장면마다 그 기억은 아주 다른 의미가 된다. 행복, 그리움을 거쳐 지금 나는 그 때의 엄마가 안쓰러워 눈물이 난다. 그리고 그런 기억이 있어 무척 다행인 내가 있다.


내 삶의 원동력이 떨어질 때마다, 아니 이제 그만 하자 싶다가도 끝내 내려놓는 것은, 아마 그 기억일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순간 나를 보던 온전한 사랑. 그건 나에게 일종의 부적이었구나. 다시 깨닫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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