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그 깊은 상처의 시작
초등학교 3학년에 접어들었을 때. 집안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엄마는 자주 앓아 누웠고, 나에게 알 수 없는 돈 심부름을 시켰다. 학교에 다녀왔을 때, 그 어둡고 가라않은 기운. 넓고 환한 집으로 이사했지만 집안 분위기는 그와 반비례했다.
비오는 어느 날, 한껏 무거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설거지를 시작했다. 처음엔 싱크대에 담겨진 그릇을 씻기 시작해 집안의 온 그릇을 다 꺼내 씻었다. 그 와중에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자리에 누운 엄마를 위해 미역국에 밥을 끓였다. 죽을 끓이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건 끓여져 있는 미역국에 밥을 넣어 푹 끓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그릇을 다 씻고, 어느 정도 푹 물러졌다 싶은 미역국밥, 죽을 담아 엄마에게 가져갔다. "엄마 이러라도 먹어". 하지만 엄마는 한 술 뜨더니 "소태처럼 짜다"며 거부했다. 간을 한 미역국을 끓이고 끓이면 짜게 된다는 걸 난 몰랐다. 졸아들면 물을 부어야 했는데, 난 계속 미역국을 부었으니까. 그래도 서러웠다. 난 10살이었으니까. 그것도 온 몸으로 느낀 불안감을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며칠 뒤.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순간 순간, 아빠가 거실 커튼을 뜯으며 화를 냈었고, 그리고... 그 날. 날이 맑았는지 저녁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에 그 날은 온통 어두웠다. 안방에 엄마와 아빠가 있었고, 둘은 다투는 것 같았고, 나와 두 동생은 방치된 그날. 나는 어렴풋이 안방에서 어떤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거실에서 두 동생에게 과자를 나눠주며 그 모든 나쁜 기운이 걷히기만을 바랐다. 동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알지 못하기를, 그래서 더 열심히 과자를 주고 더 열심히 놀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아빠가 먼저 안방을 나왔던가.. 그제서야 들어가 본 안방에는 엄마가 사뒀던 코끼리 모양의 석고 장식품이 망가져 있었고, 엄마는 방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나는 뭘 해야 했을까. 엄마에게 달려들어 달래야 했을까. 아빠에게 왜 저랬냐고, 왜 엄마한테 저랬냐고 따져 묻고 달려들어야 했을까.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문을 닫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날 나의 그 행동이 40년 지난 지금도 아프다.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며 울던 엄마를 보고 아무 말도 못하고 외면하던 내가 여전히 있고. 나는 아직 그 애를 용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