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구원하소서 9

이별은 갑자기 잔혹하게

by 영원

앞선 그 일 뒤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가 빚을 진 것을 알게 된 아빠가 분을 참지 못했고, 그 일로 사달이 났었고, 암흑이었겠지.


아빠는 매일 엄마에게 만원, 삼만 원, 일정치 않은 돈을 준 것으로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적든 크든 규모 있는 돈을 일정하게 주는 것과 들쑥날쑥한 푼돈은 차원이 다르다. 엄마는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워야 했고, 아빠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엄마는 아빠가 무서웠고, 아빠는 집안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크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아빠의 약국은 늘 우리집 근처,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었다. 엄마는 입맛 까다로운 아빠를 위해 아침을 차려내고 점심을 해 날랐다. 조그마한 쟁반에 밥, 국, 반찬 3-4개를 담고 보자기로 싼 것을 매일 약국으로 날랐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매일 새 반찬을 하고, 새 국을 끓였다. 어느날은 엄마가 아빠 점심을 가져다 준 사이 장마비가 내렸고, 우산 없이 나간 엄마를 위해 우리는 발 씻을 물과 수건을 들고 기다렸다. 아빠는 무엇때문인지 마음이 상한 날은 그런 도시락마저 쳐다보지 않거나 남을 줘버렸고, 애써 먹이기 위해 나한테 들려보낸 날이면 횡당보도 앞에 서 있는 나를 보고 그냥 돌아가라고 손짓을 해 나는 되돌아가기도 했다.


엄마는 규모 없는 생활비, 개념 없는 남편에도 자식을 키워야 했고, 그래서 돈을 빌리고 그걸 값기 위해 나름의 재테크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이사한 대전 도마동의 집에서 나는 하숙생들과 함께 지냈고, 그 오빠들에게 볼펜돌리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순진하고도 다급한 엄마에게 그 당시 재테크란 공수표, 사기에 가까웠다.


소통이 되지 않고, 서로 이해도 할 틈이 없었던 상황에서 누군가는 계속 돈을 줬지만 누군가는 빚을 졌다는 것은 잘, 잘못이 매우 명확한 일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채권자들에게도 아빠를 비롯한 시댁식구들에게도 '죄인'이 됐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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