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으로 구원하소서 10

10살 아이, 엄마를 빼앗기다

by 영원

그 험한 날이 지난 뒤, 어찌어찌 지내던 어느 날, 등교하려던 나를 엄마가 불렀다.


엄마는 1000원을 나에게 쥐어줬다. "학교 다녀 와서 간식 사 먹어"라는 엄마는 지난 며칠 방에서만 지낸 터였다. 나는 그런 엄마라도 너무 소중했고 나한테 용돈 준다 생각했었다. 내 기억에 별 말 없었던 엄마는 나한테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싶었을까.


학교를 마친 뒤, 평소대로 이른 오후 집에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다 어디 갔을까. 집 앞 놀이터에서 한참을 노는 사이 나는 배가 고팠고, 주머니엔 엄마가 아침에 준 1000원이 있었지만, 그걸 써버리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무렵 누군가 나를 데리러 왔고, 집에 돌아왔지만 아침만 해도 방에 있던 엄마는 없었다. 엄마가 어딜 갔는지 왜 없는지 나와 내 동생들에게 설명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엄마의 동생인 이모가 우리를 돌보러 왔다.


엄마는 (물론 나중에 들었지만) 내가 10살이 될 때까지 우리를 품에서 떨어뜨려 놓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홀로 아이를 보면서 하숙을 치는 딸이 안쓰러워 외가로 나를 데려가려던 외할머니를, 처음엔 보내놓고도 택시타고 따라와 다시 데려갔던 게 내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한 순간에 떠났다고? 그 사연을 몰랐어도, 이모가 있든, 아빠가 있든 우린 고아였다. 엄마가 없었으니까.


엄마가 없는 공간에 살던 나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그 전에 우리 엄마와 그렇게 친했던, 나와 우리 남매를 조카처럼 대했던 이들이 채권자라는 이름으로 집에 쳐들어온 것아었다. 엄마가 그들에게 돈을 빌렸고, 제대로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우리집에 들어왔고, 그렇게 살갑게 지냈던 우리를 모른척 했다. 그들은 우리 집에서 배가 고프다며 콩나물밥을 해다 먹고 깔깔대며 웃었고, 무엇보다 나를 외면했다. 한밤중 내 방에서 나와 거실을 봤을 때, 그들이 우리집 이불을 덮고 자는 걸 보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분노와 증오를 느꼈고 또 삼켰다. 하다 못해 그들이 덮고 자는 이불을 나는 모조리 걷어버리고 싶었다. 그걸 하지 못했던 나는 그들을 아주 오래 쳐다보다 말았다. 나는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불을 걷으며 욕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나는 그때, '배신'이라는 단어보다 그것이 야기하는 아주 잔혹한 장면을 먼저 목격한 것 같았다. 처음으로 엄마를 잃고, 아빠는 없는 것 같은 10살, 7살 4살 아이가 사는 집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물론 그때는 우리의 나이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모같은 것, 자매같은 것, 가족같은 것이라던 사람이 어떻게 상처와 충격을 줄 수 있는지 알았다.


엄마가 없던 어린 3남매를 맡은 건 엄마의 동생인 이모였다. 미혼인 이모는 우리가 아기였을 때 함께 살기도 했고, 가정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를 임시로 돌봤다. 이모는 어느 정도 사태를 아틑 사람으로서, 우리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우리를 애틋하게 돌봤다.


나는 4학년으로 진학하고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 지 모르면서 이렇게 저렇게 지내던 중, 어느날 밤, 아빠는 말을 하고 이모는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자다가 나와 그 장면을 목격했지만,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몰랐지만, 그 뒤에 우리는 또 하나의 변화를 겪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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