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냄새가 나면 봄이 오는 걸,
햇빛에서 노란색이 우세하면 가을이 와있단 걸 알아채곤 한다.
고구마를 캐고 이제 마지막이 될 것 같은 호박을 하나 따 제법 굵직하게 썬 다음 버터 한 조각과 소금을 넣고 스뎅후라이팬에 구웠다. 아침을 먹고 남은 식은 밥 위에 욕심껏 얹어서 혓바닥에 데이도록 허겁지겁 먹었다.
부엽토 다섯 포대를 산에서 긁어오고 방앗간에서 한 포에 칠천 원을 주고 사온 깻묵을 비에 맞혀 적셔두었더랬다. 나무파레트 세개를 굵은 케이블타이로 묶어 세운다음 퇴비간을 만들었다. 들깨를 떨고 남은 줄기와 고구마 줄기, 호박줄기들을 깔고 부엽토를 한포 부은 다음 장화발로 꾹꾹 밟아주고 음식물쓰레기와 정부보조로 받은 퇴비를 섞어두었던 것을 깐다. 깻묵도 뿌려준 다음 그 작업을 반복하면 내년 봄 퇴비 준비는 구할이 끝났다. 겨울이 오기 전 골고루 한 번 섞어주면 훌륭한 거름이 된다.
잠시 땀을 말리며 요즘 한껏 빠져있는 노래를 들었다. 노벨상을 받은 한강씨가 듣고 울었다는 그 노래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거지.
아무리 흥얼거려도 잘 외워지지도 않고 박자도 놓친다.
움푹 패여서 지나다니기 힘든 동네 시멘트 길에 작은 돌들을 주워다 메꿨다. 어째 써놓고보니 내 노력에 비해 너무 짧은 한줄이다. 시골일이 다 그렇다. 장갑을 꼈지만 모난 돌들을 하나하나 줍느라 허리와 손가락 끝은 뻐근하고 아리다. 노란색 리어카로 언덕길을 대 여섯번이나 오르고 평평하게 까느라 온몸이 다 젖었는데...돌을 주워다 메꿨다라니.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13년 간병은 3년전 그날 두손을 들었다.
2층 옥상에 제법 큰 돈을 들여 방수공사를 하고 집을 지은지 십년이 넘어가고 있어서 도배며 부엌을 리모델링 했었다. 근데 그 날 2층 딸아이 방에 비가 새서 천장이며 벽이 물에 불어 불룩하게 배가 불러왔고
공사를 했던 소장은 나몰라라했고 어머닌 저녁을 하는 내 옆에 서서 불을 켜면 불을 끄고 수전을 켜면 팔꿈치 아래 절단한, 짧고 뭉툭한 팔로 끄면서 같은 말을 무한반복하고 계셨다.
무슨 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입을 열면 내 안에 천불이 불을 뿜는 용마냥 쏟아져 나올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고 내 할일만 하고있었다. 수십번을 반복하던 어머닌 조용히 당신 방으로 들어가셨다.
주저앉아서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세상 그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처럼 내 안에 사악한 동물같은 울음을 감추지 않고 쏟아내며 울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뉴스에 나오던 수많은 학대사건들처럼 나도 정서적인 학대를 하고 있는 거구나. 내한계는 여기까지구나.
남편과 상의를 하고 집에서 가까운 요양원을 이곳저곳 알아보게 되었다. 경치 좋고 공기좋은 곳들은 제외되었다. 치매환자들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에게 공기좋고 경치좋은 곳의 장점들이 갇혀 지내야하는 엄니같은 치매 환자들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때문이다. 자주 찾아가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이 우선이었고 원장님의 마인드였다.
지인의 장모가 여러군데를 떠돌다 정착한 요양원이 있단 소식에 전화를 해보니 이미 정원이 차있었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분이 돌아가시면 한자리가 비는 시스템이라 무작정 기다리는 수 뿐이었다. 급할 것 없으니 간곡히 부탁드리고 무적정 기다리기로 했다. 마음은 먹었지만 당장에 어머니를 시설로 보내기에 나도, 남편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육개월즘 지난 뒤 원장님이 전화하셨다.
함께 지내던 부부가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면서 아직도 그리 들어올 마음이 있는 거냐 물어왔다.
따듯한 내의를 사고 시설에서 입고 지내실만한 조끼와 양말도 사서 '춘자'라는 이름을 수놓아드렸다. 요양원 앞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이것저것 군것질도 하고 시간이 돼서 입소하러 건물로 들어섰다. 수많은 서류에 싸인을 하고 엄니가 지내실 방에 룸메이트도 뵙고 요양사선생님, 간호사선생님과도 인사를 했다.
엄니를 두고 나서려니 어깨에 매고있던 가방을 추스리며 따라일어선다.
ㅡ어머니 요앞에 시장에 장 봐올테니 여기서 친구들하고 좀 기다려줘.
ㅡ오냐, 느그아부지 올 시간이니 저녁해야지. 알았다.
돌아가신지 십년이 넘은 남편 저녁 걱정에 다시 자리에 얌전히 앉으셨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원장님이 내마음을 아신건지 의례적으로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큰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셨다.
ㅡ며느님 그동안 애썼어요. 이제 며느님 인생을 사셔요!
그래.. 엄니 인생도 한 번
내인생도 한 번인데. 이제 내인생도 오롯이 내것으로 살아봐야지.
처음 어린이집에 큰 아이를 떼놓고 오던 날처럼 난생처음 엄니를 내곁에서 떼놓던 그날
죄책감과 설레임 그 어디즘에 서있었던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