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심어 놓으시고, 선택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아님 불순종할 것인가? 분명 인간의 속성을 알고 계신 하나님은 불순종의 역사를 연출하고 계셨을 것이다. 아마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냐, 돈이냐의 선택 앞에서 무차별 돈으로 무너진다. 어느 누가 이 선택 앞에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매일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반복된 어리석은 선택들, 그것을 계획하시고, 그 결과를 알고 계신 하나님은 나쁜 선택에 주목하기보다는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을 찾기를 희망하고 계시고 있지 않을까?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종교 이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또한, 돈의 선택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에 동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의 방법으로 노동을 실천하여 소유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이 돈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며, 매매의 법칙에 사는 사회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악의 유혹이 없는 이상 세계보다는 악의 유혹에 저항하여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의 나라를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권세 아래에 돈의 선택은 인간에게 부유함을 제공하지 않으므로, 가난하게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여 가난한 그리스도인의 대열에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선택의 갈림길에서 ‘돈을 선택’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하루 속에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었을까? 선택의 의지(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 수가 없으나, 분명 오늘도 하나님의 처소에서 다시 한번 눈물로써 회개를 기다리고 계심을 알고 있다.
부모 된 자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올바른 선택은 의무이자 삶의 이유가 분명하다. 비록 매일 선택의 고뇌 속에서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다시 하나님 나라를 선택할 수 있도록 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하며, 가난한 예수님을 알아가며, 사회의 한구석에서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 그리도인의 삶이 아닐까 한다.
다시 정리한다면, 우리는 가난한 예수의 삶을 쫓는 어설픈 돈의 노예인 듯하다.
2015.10.19.
선택의 걱정 없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