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 파이집을 시작했다.
뜻밖의 기회로 집에서 호두파이를 팔기 시작한 지 딱 1년 만에 매장을 낸 셈이다.
우리 첫째가 초1, 둘째가 5살 유치원생이었다.
개업은 조촐했다. 호두파이를 굽게 되면서 인연이 된 친구들이 개업 선물로 화분을 들고 와서 축하해 줬다.
나는 호두파이집답게 개업떡 대신 미니 호두파이를 준비해서 방문해 준 친구들과 상가에 돌렸다.
그렇게 동네 작은 파이집이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줄곧 나에게 묻곤 한다.
"부업으로 할만해요?"
"부업해서 얼마 벌어요?"
난 파이집을 한 번도 부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본업이 파이집이다.
그렇지만 1순위는 항상 내 가족이었다.
특히 내 아이들을 케어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파이집 영업시간도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했다.
'애들 없는 낮시간에만 운영하자' 그런 마음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저 집은 장사를 안 하나 싶었다고 농담을 건넸다. 특히 출퇴근하는 주민들은 가게가 열린걸 한 번도 못 봤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자 손님들도 눈치챘다.
'아... 이 집은 장사보다는 아이들이 우선이구나.'
이제 봄이 되면 당시 초1이었던 첫째는 고2, 5살이던 내 꼬맹이는 중2가 된다.
.........
가게 영업을 오후 4시까지만 하는 경우는 그 당시엔 거의 없었다. 몇 년 뒤 핫한 지역에선 그렇게 운영하는 디저트가게도 종종 보였다. 나는 혼자 속으로 웃었다.
'나는야 개척자!'
과연 오후 4시까지만 하는 파이집도 유지가 될까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사장 스케줄에 맞춰서 손님들이 방문해 주셨다. 시간 되면 애들 데리러 가야 하는 걸 알아서 다들 양해해 주셨다.
나는 사업자를 내서 다시 맘카페에 당당하게 홍보했다. 맘카페에서는 또다시 엄청난 화제가 됐고 그해 12월에 파이집은 오픈빨에 크리스마스빨까지 받아서 대박이 났다.
물론 나는 너덜너덜해지고
우리 집은 쓰레기장이 되고
애들은 꼬질꼬질해졌지만.
난 그 달을 잊을 수가 없다.
파이집 수익이 당시 대기업 과장인 오빠야 월급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매출 말고 순수익으로!
뭐... 물론 계속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가능성을 확인했다고나 할까?
오빠야한텐 말하지 않았다.
그를 괜히 설레게 만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아직까지 그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모른다. 비밀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