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아이들이 1순위

워킹맘의 아픈 손가락

by 정파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워킹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간이 있

다. 방학이다.


초등학교에는 돌봄 교실이 있다. 요새는 몇 학년 때까지 봐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애들 어릴 땐 2학년까지 가능했다.


그 이후는 막막하다. 난 애들을 달고 다녔다.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아직 어린아이들만 두기엔 내 마음이 불안하고 편치 못했다.


방학이지만 늦잠 같은 건 다.

엄마가 가게 오픈 할 시간에 맞춰 같이 가게로 가는 거다.

파이집 테이블에 앉아 오전 공부를 하고,

가게 근처에서 놀기도 하고,

점심땐 파이집에서 식사를 준비해서 먹이고,

오후가 되면 내가 학원에 데려다주는 거다.

잠시 가게 문 닫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가게 문 열고여름방학, 겨울방학 내내 반복했다.

미리 공지해 둬서 손님들도 그 시간은 피해서 오셨다.


과연 내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루종일 엄마를 부른다.

엄마! 이거 뭐야? 엄마! 이거 나 몰라!

엄마! 나 이거 먹어도 돼?

엄마! 엄마!


그래도 나는 애들을 달고 다닐 수 있는 자영업 워킹맘이라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출근하는 엄마들은 또 얼마나 애가 탈까 싶다.


그렇게 애들하고 같이 구르다 보니 어느새 다 컸다. 이제는 방학에도 자기들끼리 집에서 있겠단다. 밥도 알아서 해 먹고 시간 되면 알아서 학원도 챙겨간다.


겨울방학을 맞아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워킹맘들을 응원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던지 없던지 얼마나 매일매일이 걱정의 연속일지 누구보다 이해한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자더라. 해가 갈수록 나도 아이들도 조금씩 수월해진다.


언젠가 찾아올 자유의 날까지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할 수 있다.


........


2014년, 파이집에 첫겨울이 왔다.


우리 집 초1 첫째는 길고 긴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다행히 내가 사업자를 내서 맞벌이 부부인걸 서류로 증명할 수 있었다. 아이는 학교 돌봄 교실에 들어갔다.


아침에 평소처럼 등교해서 돌봄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태권도 관장님이 픽업해 주시기로 했다. 끝나면 피아노도 치게 스케줄 세팅을 해놨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열이 났다. 아침 일찍 병원을 갔는데 다행히 고열은 아니고 일반 감기였다.


하필 그날은 케이크 주문이 있었다.

돌잔치 케이크라 꼭 준비해줘야 했다.

케이크만 아니었다면 그날은 아이를 돌보며 파이집을 쉬었을 거다.


첫째에게 돌봄 교실로 가서 조금만 기다려주면 엄마가 후딱 케이크만 만들어주고 데리러 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영업은 하지 않고 오후 시간은 너랑 보내겠노라 약속했다.


컨디션이 별로였던 아이는 집에 가서 그냥 자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없어도 집에서 혼자 자면서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불안했지만 아이가 괜찮다고 해서 집에 데려다주고 가게로 달려갔다.


케이크를 만들다가 문득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쎄했다.

아뿔싸! 급한 마음에 차에 핸드폰을 두고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혼비백산한 나는 곧장 차로 뛰어가서 핸드폰을 찾았다. 그사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와있었다. 아이 전화, 남편 전화, 심지어 부산 시엄마 전화까지...


아이는 자보려고 했지만 고요한 집안에 혼자 있다는 느낌에 문득 무서워졌단다.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괜찮을 거 같아서 전화를 했는데 아무리 해도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았던 거지. 패닉에 빠져 울면서 아빠와 할머니한테 전화를 한 거였다.


다급히 아이와 통화해서 진정시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근무 중에 무단으로 나왔다며 곧 집에 도착하니까 하던 거 마무리하고 오라고 했다. 평소라면 화를 냈을 텐데 그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시엄마도 오히려 놀랐겠다며 날 위로하셨다.


아이들에겐 늘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내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케이크는 무조건 준비를 해드려야 다. 손님의 칠순 잔치, 돌잔치를 망칠 순 없었다.


난 그날로 메뉴에서 케이크를 뺐다.

나로서 그게 최선이었다.

내 1순위는 아이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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