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는 3년 내 망한다?
또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아픈 초1을 혼자 집에 방치한 소동 이후 우리 가족은 내가 봐둔 동네로 이사했다. 아이들이 학교랑 학원에 다니기 좋아 보였던 그 동네 말이다. 물론 당연히 아직 전세였다.
집에서 파이집까지 차로 10분 거리가 됐다. 여차하면 집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된 거다. 일터와 집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내 생활은 안정되어 갔다.
케이크를 메뉴에서 뺐기 때문에 파이 메뉴를 점점 늘렸다. 시작은 호두파이 하나였는데 8가지 종류로 차츰 늘어났다. 그때마다 새로운 파이를 먹어보려고 손님들이 와주셨다.
파이집은 나름 대목이 많았다.
설, 추석에는 명절 선물,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 선물,
수능철에는 수험생 선물,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는 선물이나 파티용 간식.
그렇게 정신없이 파이를 구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파이집을 오픈한 지 1년이 됐다. 주변에서 1주년 축하를 많이 해주셨다. 자신 있게 시작했지만 금방 접게 될까 내심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아 뿌듯했다.
나는 오빠야한테 오픈 1주년이 됐다고 자랑을 했다.
무심한 이 부산오빠야는 한마디 툭 남겼다.
"자영업자는 3년 내에 거의 망한대. 3년 버티고 말해."
지금 파이집은 9주년을 넘기고 10년 차다.
인자 됐나? 이 문디 오빠야야!(부산 사투리)
.........
2017년.
오빠야가 넘겨야 한다던 자영업자 3년 차가 됐다.
그 해에는 나의 꼬맹이가 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딸들은 4학년, 1학년이 됐다.
파이집은 별 탈 없이 굴러갔다.
그해 여름에 살충제 계란이니 뭐니 하며 한바탕 난리가 나면서 재료수급에 문제가 생긴 적도 있었지만 또 그럭저럭 해결됐다.
파이집 3주년을 앞둔 그해 가을에 매장으로 어떤 젊은 여성분이 찾아왔다.
백화점에서 나왔단다.
건네는 명함에는 '○○백화점 상품본부 식품사업부'라고 적혀 있었다.(이거 적으려고 명함 다시 찾아봄)
'공산품팀 바이어 박○○.'
내가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5년 만에 자유를 만끽하며 신나서 놀러 다녔던 그 백화점이었다.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형 백화점.
나는 의아했다.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었더니 입점 제안을 하러 왔단다.
생각지 못한 방문에 나는 너무 놀랐다.
"예??? 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