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집은 내 돈으로만 준비했다.
그동안 호두파이와 딸기케이크를 팔아 모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는데 그 돈이 생각보다 꽤 됐다.
오빠야는 그거 재료값은 다 자기 돈으로 쓰고 그동안 판매한 금액을 전부 모은 돈 아니냐고 놀렸다.
아니다. 난 증권기사를 쓰던 숫자쟁이였다. 돈계산은 정확하다.
철저히 매출에서 재료비, 포장비, 도구비 그리고 배달도 다녔으니까 주유비까지 지불했다.
그렇게 모은 수익금이었다.
그 돈으로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과 설비를 채웠다.
그리고 경차도 하나 뽑았다.
엄청 큰돈을 모았나 싶을 거다.
아파트 뒤편에 눈에 안 띄는 작은 상가는 보증금도 작았다.
인테리어는 최소한으로 깨끗하게만 했고 설비도 원래 쓰던 오븐과 반죽기 외엔 모두 중고로 들였다. 오븐과 반죽기도 국비수업을 들을 때 받은 훈련비를 모아서 산거였다.
경차 역시 중고로 사려고 했는데 돈이 얼마 안 남아서 남은 현금 100만 원을 들고 기아 매장에서 레이를 계약했다.
나머지는 5년 할부.
내 미래야 부탁해!
고집스럽게 대출이나 주변 도움 없이 파이집을 꾸린 이유는 오롯이 내 힘으로 만든 파이집이라는 걸 오빠야한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되고 육아만 하던 시절, 남편과 간혹 트러블이 있었다. 그걸 내 경제적 무능력함을 탓하는 남편의 불만으로 받아들였다. 그저 외벌이 하는 남편의 하소연일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적 능력이 없던 나에게는 상처가 됐었다. 그 자격지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부단히 노력해 왔던 거였다.
바닥난 자존감은 호두파이를 팔게 되면서 많이 회복되었다. 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기쁘고 뿌듯했다.
내가 만든 호두파이가 맛있다는 후기글이 쌓일 때도, 배달 가서 만난 손님들의 칭찬이 이어질 때도, 호두파이 굽는 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응원을 받을 때도...
구겨져있던 마음이 조금씩 펴졌다.
파이집을 내 능력만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큰 자부심이었다.
비록 규모가 작고 위치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시작한 파이집이었지만 자신 있었다. 그동안 쌓인 경험과 단골손님들과 가족의 응원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