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파이를 구웠더니 친구들이 생겼다
인연은 소중하다
오늘은 파이집 문을 닫았다.
'임시휴무!'라고 써붙였다.
'경상도언니야들'이라는 모임의 10주년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매가 없는 나에게는 자매 같은 친구들이다.
10년 전 맘카페에서 호두파이로 내 이름을 날렸던 시절, 그때 맘카페에 호두파이 사진이 자꾸만 올라오는 걸 보고 어떤 대구언니가 심술이 났단다. 그 언니는 맘카페 핵인싸였다.
'뭔데 이래 난리고! 나도 함 무보자! 맛없기만 해 봐라. 내가 신랄하게 까버릴테다!'
그런 맘으로 주문을 했단다.
난 그 언니가 카페 내 핵인싸인걸 알고 있어서 사실 파이를 갖다 줄 때부터 좀 쫄았다.
'이거 여차하면 난도질당하는 호랑이굴이겠구나.'
그렇다고 주문을 안 받을 수도 없고 만들어줬다.
근데 만나보니 그 언니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거다. 유명인사인 줄은 알았지만 대구 언니인 줄은 몰랐었다.
결혼하면서 곧장 부산에서 올라와 경기도 타지에서 살고 있던 나는 그녀의 사투리가 무척 반가웠다. 반색하는 나를 보며 그 언니가 입을 열었다.
"내가 경상도 함 모아주까?"
그게 경상도 모임의 시작이 됐다. 그날 맘카페에 그 대구언니가 글을 썼다.
"경상도 출신 있으면 함 모이 보자! 사투리로 한번 씨부리 보자!"
이런 간단한 글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외지에서 나처럼 외롭게 육아하며 살던 경상도 출신 엄마들이 너도나도 나타났다.
그 대구언니는 대형카페에 단체석 예약을 했다. 한 10명 정도 나올려나 예상했는데 30명이 넘게 왔다. 그동안 주변에서 경상도인을 한 명도 못 봤었는데 너무 많이 모여서 깜짝 놀랐다.
카페는 경상도 사투리로 가득 찼다. 경상도 아줌마들이 목소리는 좀 컸겠는가. 난리법석 시끌벅적했다. 그날 그 카페 매출은 우리가 책임졌다.
이미 나는 호두파이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호두파이를 잔뜩 구워가서 간식으로 제공했다.
부산, 대구 출신이 제일 많았고 진주, 울진 등등 각지 출신들이 모였다. 애기 데리고 온 엄마들도 많았다. 다들 그날 처음 만난 건데도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단지 같은 지역출신, 같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인 것만으로 충분했다.
다들 타지에서 외로웠으니까....
그렇게 모임은 시작됐다.
한번 사람을 끌어 본 그 대구 언니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주선했다. 그때마다 수십 명이 모였다.
모두가 다 함께 친해진 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끼리끼리 모이게 됐다.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성격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
어차피 우리가 사람들을 모아서 뭘 해보려는 목적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뜻 맞는 사람들끼리 만남을 가지는 걸 응원했다. 그저 동네 친구를 만들어 준걸로 기뻤다.
그중에서도 적극적인 사람들만 남아 지금의 소모임이 됐다.
단톡방에서 수다도 잘 맞고 모임 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언니동생들이 남았다.
모임 이름을 정해보자 해서 '경상도언니야들'이 됐다.
한참 애들이 어린 육아맘들이라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급할 때 애기를 맡아주기도 하고,
작아진 애기 옷을 물려주기도 하고,
애들끼리 같이 놀게도 해주고,
그렇게 지냈다.
처음 만날 때는 존재 자체가 미정이었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 지금은 학교를 다닌다.
그렇게 우리의 세월이 쌓여서 올해 10주년 모임을 했다.
육아를 함께 해온 10년이라는 시간은 학교를 함께 다닌 10년의 시간보다 더 끈끈한 게 있는 거 같다.
엄마들끼리 생긴 전우애라고나 할까.
게다가 같은 지역문화를 공유하고 있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뭔가가 있다.
수도권에 살면서 새로 익힌 어색한 서울말 대신 편하게 내 고향 말투와 단어를 마음껏 써도 된다는 게 서로를 더 돈독하게 해 줬다. 그래서 그동안 정말 자매같이 친구같이 잘 지내올 수 있었던 거 같다.
남편 직장 따라, 집안 사정에 따라 이곳을 떠난 친구들도 있다.
어차피 이 지역은 연고도 없으니...
누군가는 제주로, 누군가는 진주로, 누군가는 인천으로, 또 서울로...
그래도 우린 여전히 연락하며 정기적으로 만난다.
나는 지금은 비매품인 딸기 케이크를 만들어갔다.
그동안 풍선 장식을 익힌 언니는 풍선으로 10주년 기념 장식을 해줬다.
누군가는 비행기를 타고 오고 누군가는 연차를 쓰고 왔다.
그중엔 애들이 갑자기 아파서 참석 못한 친구도 있었지만 또 다음에 만나면 되니까 괜찮다.
어쩌면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이렇게 인연이 돼서 오랜 친구가 되는 것... 참 신기한 일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