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월요일에 동네 단골 할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80대 할머니신데 원래 따님이 파이집 손님이어서 어머니까지 단골이 되셨다.
목요일에 호두파이 4판이 필요한데 아침 일찍 배달이 되느냐고 문의하셨다.
워낙 연세도 있으시고 근처 단지라 가깝기도 하고 아침에 가지러 오기도 힘드실 테니 흔쾌히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좋아하시면서 일단 알겠다고 가능한 건지 물어본 거라며 내일 화요일에 전화를 다시 주겠다 하시곤 끊으셨다.
뭐 그냥 확인해 보는 전화는 자주 있는 일이라 난 별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화요일, 할머니는 다시 전화하셔서 주문은 하는데 입금은 수요일 오전에 해도 되냐고 물으셨다.
그 또한 자주 있는 일이니까 또 흔쾌히 그러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전화를 못 끊으시고 머뭇거리시는 거다.
"왜요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내가 미안해서... 사실은 목요일 아침에 우리 집에서 교회 사람들 모임이 있어서 내가 맛있는 호두파이를 선물로 나눠주고 싶어서 그래...
아니 근데 혹시나 목요일 전에 오는 사람들 중 누구라도 초상이 나면 모임이 파투가 나거든...
그러면 또 내가 파이 사장한테 피해를 끼치는 거 같고..."
헉... 예상치 못한 할머니 말씀에 어질어질했다.
이것이 바로 저세상 토크인가.
"아이고~ 어머니 괜찮아요. 저 피해 없어요~
무슨 일 생기면 취소하셔도 괜찮으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협... 이건 또 무슨 망발인가.
마치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다는 말 같잖아!
내 머릿속은 혼란해졌다.
무슨 말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늪 같았다.
거기다 할머니가 말씀을 덧붙이셨다.
"아니... 또 그 사람들 본인 초상이 아니라도 주변에서 초상이 나면 그래도 모임이 파투가 날 수 있어서 내가 걱정이 돼서 그래."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초상 토크에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이 됐다.
난 다 괜찮으니까 제발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럼 파이 사장~ 내가 내일 수요일 오전 9시 반에 입금을 할게요. 혹시 입금이 되면 약속대로 진행해 주고 입금이 안 들어가면 파투가 난 거야. 알겠지?"
후덜덜....마치 신의 결정만 남은 것 같았다.
이것도 생사를 기다리는 심정이려나.
그날 화요일 오후, 열심히 다른 주문을 준비하던 중에 또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호다닥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진짜 뭔 일이 난 건가 아찔하더라.
"아.. 아니. 한판 더 추가해 줘요."
와아... 깜짝이야. 십년감수했네....
다행히 수요일 오전 9시 반에 호두파이 5판 금액이 입금됐다.
난 한숨 돌렸다.
그래도 다음날 아침까지 혹시나 싶어서 긴장을 놓지 못했다.
마침내 목요일 아침 일찍 배달까지 무사히 해드렸다.
해피엔딩이다.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연세 높은 어르신들은 이렇게 모임 한번 하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할머니가 그런 걱정을 하셨다는 건 이미 그런 경험을 하셨기 때문이겠지.
마음이 서글퍼졌다.
처음에 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땐 이런 대화가 당황스럽고, 슬픈데 웃기고, 그렇다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마치 코미디 콩트에서나 나올 법한 대화 같았다.
우리 부모님은 아직 그 연배가 아니셔서 주변에 그런 일은 거의 없었지만 곧 그런 날도 올 수 있겠구나...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 생을 다할 때 마음이 얼마나 헛헛하고 슬프실까 싶었다.
나로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어서 마음이 이상했다.
이상 내가 파이집에서 경험한 저세상 토크 찐 바이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