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별로 활동 없이 집콕만 하고 있길래 겨울잠을 자는 건가, 이제 늙어서 활동량이 줄은 건가 염려가 됐다. 새로운 먹이를 줘봐도 흥미가 없어서 '아, 이제 수명이 다해가나 보다.' 어림짐작만 하고 있었다.
근데 최근 들어 저녁시간마다 자주 나와서 어항을 돌아다녔다. 가끔 어항 앞쪽에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집으로 슬금슬금 돌아갔다.
우리 가족은 김가재가 그동안 정말 겨울잠이라도 잔 건가,지금까지 겨울잠을 잤다면 너무 게으른 거 아닌가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했다.
어제저녁에 문득 어항을 들여다보니 김가재가 배를 까고 누워있었다. 새끼 때부터 간혹 그런 자세로 자며 놀라키 곤 했던 터라 자고 있을 가능성 높았지만 왠지 걱정이 되어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한참 보다 보니 발을 약간 움직이길래 '아~ 역시 자나보다'하며 안심했다.
오늘 아침 아이들이 등교하고 무심코 어항으로 눈이 갔다. 다시 김가재의 코코넛 껍질 집안을 들여다보니 어제와 같은 자세다.
아... 설마...?
탈출의 명수인 가재의 탈출을 막기 위한 유리뚜껑을 들어내고 어항 집게로 코코넛껍질을 살며시 들어보았다. 잘 때 집을 건드리면 후다닥 일어나 자세를 고쳐 엎드릴 녀석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갔구나...
하필 이번주는 남편이 미국출장을 가서 기다릴 수도 없다. 내가 보내줘야 했다. 김가재가 가장 좋아하던 은신처 코코넛껍질을 함께 넣어줬다. 아이들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남편은 본인이 없어서 내가 직접 꺼내야 하는데징그러워할까 싶어 걱정을 했다. 근데 막상 꺼내보니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작고 소중했다.
김가재는 코로나시기가족들이 모두 집에서 머물러야 할 시기에 아주 작은 새끼 치가재 때 우리 집에 왔다. 여러사정으로 십수 년간 몸담은 회사에서 등 떠밀리다시피 퇴사한 나의 오빠야가 가장 힘든 시기에 시작한 물생활 취미였다.
처음 설치해 본 어항에 처음 키워보는 가재라 물관리 방법이 서툴렀던지 김가재 앞에 데려온 다른 치가재들은 대부분 제대로 크기 전에 탈피에 실패해서 죽었다.
반복되는 가재 사망 소식에 실망한 아이들은 더 이상 마음 주고 싶지 않다며 그만 키우자고 했다. 오빠야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또 가재를 한 마리 데려왔다 그 녀석이 김가재였다.
'김가재'라는 이름은 앞선 가재들이 숱하게 죽어나가자더 이상 이름 붙이기도 지친 아이들이 대충 자기들 성을 붙여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었다. 개똥이 같은 느낌.
그런데 이녀석은 앞선 녀석들과 달리 쑥쑥 자랐다. 탈피속도도 빨랐고 탈피를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
실망만 하던 아이들도 애정을 쏟기 시작했고, 퇴사후 힘들었을 남편에게도 마음 둘 곳이 되어주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도 좋았다.
같이 넣어 준 열대어를 여럿 잡아먹기도 하고,짝꿍으로 넣어 준 암컷 가재와 러브러브를 해서 새끼를 낳기도 하고여러 사건들이 많았지만암컷도 새끼도 오래 살지 못하고김가재를 떠났다.
홀로 남은 김가재 영감은 그래도 어항을 꿋꿋이 지키다가 가재 수명을 얼추 채우고 돌아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