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파이 Jun 21. 2024

인간도 탈피를 할 수 있다면...?

가재는 성장을 위해 탈피를 한다.

어린 가재일수록 자주 탈피를 하고 성체가 될수록 탈피 주기가 길어진다.

어느 순간 더 이상 탈피를 하지 못하게 되면 죽음을 맞이한다.


탈피가 필요한 시기임에도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스스로 탈피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포기하는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이 부족해서 탈피하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민물가재의 경우는 수명이 짧지만 우리가 랍스터라고 부르는 바닷가재의 경우는 주변 환경이 좋고 잡아먹히지만 않는다면 탈피를 반복하며 무려 200년을 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가재는 탈피를 통해 노화된 껍질을 벗어버리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노화로 인한 질병에 걸리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체라고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


가재 키우기를 수차례 실패하며 우리 집 어항은 결국 열대어 차지가 됐었지만, 우리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시도를 하게 됐다. 이 녀석이 '김가재'이다.

언제 또 죽을지 모르니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가재라고 불렀다. 그러다 끝까지 살아남아 '김'씨 성을 하사 받은 셈이다.


단독 사육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이번엔 단 한 마리만 데려왔다.

이미 있는 열대어들과 분리하는 게 좋을까 싶어 어항 가운데에 플라스틱 망으로 구분을 하고 한쪽엔 열대어, 한쪽엔 가재를 넣어줬다.

노심초사하며 며칠 지켜보니 이 녀석... 탈피를 잘한다.

그동안의 치가재들은 한 번에 껍질을 벗어내지 못하고 버둥거리다가 죽어버렸는데 김가재는 쉽게 쉽게 탈피를 했다.

치가재일 때는 3~4일에 한 번씩, 점점 크면서는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나중에는 1년이 넘게 탈피하지 않게 되었다.


가재의 탈피는 신비로웠다. 어느 생명체나 어린 시절엔 조심성 없이 몸을 내 던지며 노는 것인지 김가재도 다리가 망가지거나 더듬이가 잘리거나 하는 등의 부상이 생기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탈피를 하면 없어졌던 다리도 다시 생기고 더듬이도 길어졌다.(눈이 망가지거나 집게가 빠져도 탈피하면서 재생된다고 한다.)


인간도 탈피를 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피부과에 가지 않아도 아기 피부로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어릴 때처럼 팽팽 돌아가는 머리도 다시 가질 수 있고

술로 찌든 간도 신선한(?) 새 간으로 바꾸어서 다시 술을 많이 마실 수도...(이건 아닌가?)

그리고 어쩌면 잊어버리고 싶기억들도 지워버릴 수 있 않을까?


탈피를  한다는 건 단단한 껍질을 벗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탈피한 직후의 가재는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상태가 되어서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험한 자연환경이었다면 목숨을 유지하기 어려웠겠지만 어항 속에서는 그를 괴롭힐 천적은 없었다.


그 무렵 우리 집에도 탈피한 김가재 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쉬지 않고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던 남자.

가족들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가족들을 가장 나중 순위로 밀어놨던 남자.

너네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며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가족들을 원망하면서도 끝끝내 제 손으로 일을 놓지 못하던 남자.

그 남자가 마치 탈피한 가재처럼 몸과 마음이 약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상황에 떠밀려 자존심을 구겨가며 퇴사를 한 그 남자는 마치 탈피한 가재가 은신처에 숨어 있듯이 집에서만 머물렀다. 다행히 마침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집에만 있는 아빠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은 없었다. 다들 재택근무를 하고 원격 수업을 하 시기였으니 그의 휴식은 자연스러웠다.


가재가 탈피하듯 인간에게도 탈피하는 시기가 있다면 바로 이런 휴식기가 아닐까.

탈피 후 더 성장하고 건강해지는 가재처럼 그에게도 그런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 가재 어항 물 갈아주는 방법


가재는 잡식성이다. 먹는 걸 다양하게 먹는 만큼 똥도 독하다.

바닥 생활을 하는 가재를 위해 바닥재를 깔아주지만 그만큼 오염도 쉽기 때문에 물갈이할 때 바닥도 어느 정도 청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매번 바닥재를 들어내고 청소를 해줄 수도 없는 일.

그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사이펀이다.

사이펀은 물을 어항 밖으로 끌어내는 도구인데 바닥을 훑으면서 물을 끌어올리면 바닥에 쌓인 이물질도 함께 딸려 나온다. 히 은신처 아래 바닥재를 집중 공략해 주면 혼탁한 찌꺼기들이 잔뜩 올라오는 걸 볼 수 있다.


물은 수돗물을 받아 일주일 정도 염소를 날려줘야 한다. 한여름에는 자주 환수 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도 염소를 날리지 않고 물을 갈아주면 어항 내 미생물들이 죽어 물이 탁해지고 결국 가재나 열대어들이 사는 환경도 깨져버린다.

어항 내 수질관리를 위해 여과기 설치도 필수이다. 살아있는 수초를 조금 같이 넣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물론 가재가 그 수초를 갉아먹거나 끊어내기도 한다.


바닥재는 두껍게 깔아주면 가재가 놀기엔 좋으나 청소가 어렵다. 두껍게 깔린 바닥재는 그 속에 오염 물질이 많이 쌓여 결국엔 시한폭탄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가재에겐 이만한 놀이터도 없으니 우린 가끔 통째로 갈아주더라도 좀 두껍게 깔아줬다.

그럼 굴삭기 놀이하는 김가재 모습을 동영상으로 첨부하며 가재 어항 물갈이 설명은 끝!

굴삭기라도 된 듯 매일 같이 땅을 파내는 김가재.
매거진의 이전글 어서 와! 가재는 처음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