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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이 Jul 23. 2024

손님 없는 파이집에서 홀로 하는 회상

장마철이다. 수시로 비가 내린다.

사실 파이집은 추워질수록 성수기가 된다.

고로 지금은 비수기라는 뜻이다.


커피 없이 파이만 포장으로 파는 파이집이니 어쩌면 당연한 계절성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이 시간이 괴로웠다. 맘을 졸이며 홍보글을 올려보기도 하고 새로운 메뉴를 추가해 넣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전처럼 마음이 조급하진 않다.

개미는 겨울을 위해 여름 동안 열심히 땀 흘려 일한다면 나는 여름을 위해 겨울 동안 덜덜 떨며 일을 한다. 그뿐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나는 운이 좋았다.

다른 시기가 아닌 그 시기에 남편이 회사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머물게 된 건 나에겐 좋은 타이밍이었다.

코로나로 요식업에 영업시간제한이 있었지만, 원래도 육아와 병행해야 해서 오후 4시까지만 운영하던 파이집이었기 때문에 별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주니 영업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남편이 프리랜서로 일하긴 했지만 소득이 그전처럼 따박따박은 아니었다. 남편에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내 마음 불안했다. 어떻게든 내 수입을 규모 있게 끌어올리고 싶었다.


때마침 학교도 멈추고 직장도 멈추면서 집에서만 머물게 된 손님들의 주문이 이어졌다. 여러 사람이 오가지 않는 파이집에서 주인이 홀로 작업한다는 걸 아시는 손님들이 안심하고 주문을 주셨다. 주문이 늘어남에 따라 인터넷이나 SNS에 노출도 잦아졌다. 덕분에 인지도가 꽤 올라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원래 회식이나 모임에서 쓰여야 하는 비용이 파이집으로 돌아왔다. 모여서 식사하기가 어려워진 분위기 때문에 고급 디저트를 주문해서 개인에게 나눠지는 방식이 선호되었다. 덕분에 파이집이 수혜를 받았다.


정부지원금도 큰 도움이 되었다. 소상공인 지원금도 있었고 전국민 재난 지원금도 있었다. 지역화폐로 지급된 재난 지원금은 동네 작은 가게인 파이집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여태껏 살면서 정부지원은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정말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시기에 정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 투성이다.

몇 년간 직장 스트레스로 고생했던 남편이 잠시 쉬었던 시기는 코로나 때문에 모두들 집에서 머물던 시기라 주변 시선 신경 쓸 필요 없이 쉴 수 있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들 학원을 하나둘 정리할 때도 구차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코로나 핑계를 댈 수 있었다. 학원가에 살지만 학원 안 다니는 아이들이 자칫 이상하게 보일 염려도 없었다.

모든 변화는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다. 수입이 줄어 궁핍해질 걸 염려했지만 지나고 보니 감사하게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나올 수 있었다.


돌아보면 왜 그리 전전긍긍 살았을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굶어 죽을까 봐?

이미 고장난 사람을 왜 진작 쉬게 해주지 못했을까.

내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사서 했기 때문에 그를 고통 속에 오래 방치해 둔 건 아니었을까.

막상 닥치니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을...


시간이 지나 그는 회복되었고, 아이들도 자랐고, 잠시 멈추었던 사이클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남편은 우울증을 극복해서 재취업을 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방법을 스스로  찾은 듯하다.

아이들은 다시 학원을 등록해서 부족한 공부를 하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래 공부를 뛰어나게 잘했던 편이 아니라 학원을 안 다녔어도 큰 타격이 없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고사성어 중에 인상 깊었던 문장이 '인생지사 새옹지마'였다.

그때는 그저 재밌는 옛날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문장이 40대 중반이 다되어 가는 오늘까지 내 삶 힘들 때 버팀목이 되어 줄 문장이 될 줄은 몰랐다.

삶의 변화무쌍함은 돌고 돈다. 가장 고난의 시기라고 생각했던 코로나 시기도 지나고 보니 새로운 디딤돌이 되었다.


파이집에서도 더운 날의 비수기가 지나면 다시 추운 계절의 성수기가 돌아오듯이 우리 인생도 힘든 시기를 잘 견디면 다시 평온한 삶이 돌아온다. 록 그 성수기가 대박이 아닐지라도 나는 괜찮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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