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지만 나아가고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문득, 다들 앞서나가고 있는데 나만 그 자리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연말이 다가오고 45세의 시간이 한 달가량 남은 요즘, 유난히 그 기분이 든다. 주변 사람 모두가 발전하고, 무언가 결실이 보이는 것 같은데 내게서는 그 무언가가 딱히 없는 것 같단 말이지.
누군가는 사업체를 더 키워서 확장하고, 더 큰 비전을 그리고 있고 또 누군가는 내가 늘 염원했던 작가의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작년과 같은 상황에 크게 이뤄낸 것 없이 또 이 지루한 12월을 맞는다.
패배주의에 젖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독이고 공허함을 채우려 소소히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사고가 두려워 운전을 하지 않아서, 면허는 왜 땄냐는 잔소리를 큰 아이에게 늘 듣고 산다. 겁이 많은 것도 이유지만 사실은 책임이 크게 따르는 일은 아예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느닷없이 전교 부회장 선거에 나가겠다며 후보 지원서와 학생 추천서 같은 서류를 들고 온 둘째 아이의 기개에 겁이 났다. 쟁쟁한 인기 있는 후보들 사이에서 어쩌면 낙선이 자명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나가보겠다는 녀석의 용감함이 내겐 충격이다. 나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이다.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했지만 속으로는 떨어졌을 때 아이가 받을 상처가 걱정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더 성장하는 부분이 많을 거라는 건 알지만 두렵다.
이렇게만 쓰다 보니 세상 이런 모지리가 따로 없다.
난 천생 모지리인가 보다. 그래, 스스로 인정하는 게 편하다.
세상 못난 모지리지만 그래도 나름의 애를 써서 자잘하게 이뤄낸 게 생각났다. 그거라도 써놔야 스스로에게 위안이 될 것 같다.
한여름 쪄 죽는 밤더위에 두 달가량 꼬박 한 시간씩 걸으며 4kg을 뺐다. 야식과 폭식을 이겨내며 이뤄낸 결과다. 똥배가 들어가니 밑위가 긴 청바지도 입을 수 있었다. 아직 유지하고 있으니 나름 성공이라고 봐야겠지.
아, 그리고 무탈히 두 학교의 수업을 열심히 해냈다.
특히, 공개수업은 처음이었는데, 바들바들 떨려서 목소리가 잠기면 어쩌나 싶었던 우려는 괜한 것이었다.
처음엔 학부모와 눈 맞추는 것도 겁이 났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 맞추고 수업에도 참여시키고 여유가 생겨서 잘 이끌었다. 내게 이런 면도 있는지 스스로 좀 놀랐다.
그리고 책도 10권 정도 틈틈이 읽었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평안히 유지하려 노력했다.
쓰다 보니 꽤 많은 걸 했는걸
모지리가 한 해 버티느라 아등바등 노력이란 걸 하긴 했구나. 잘해왔다고 스스로 토닥이는 상황이 웃기지만 이런 나여서 좋다. 모자라는 걸 잘 아는 나여서 감사하다.
#연말#자아성찰#패배주의#모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