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친과 직접 연락을 하지 않는다. 어릴 적 겪었던 폭력에 치가 떨려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후 그와 전화를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엄마를 거쳐 그의 안부를 들을 뿐이다. 두 사람이 따로 산지 10년도 훌쩍 지났다.
명절에도, 5월 어버이날 때에도 나는 엄마집으로 간다. 엄마가 우리가 내려오는 때를 전화로 그에게 알려주면, 그는 잠깐씩 나와 남편, 아이들을 보러 들른다. 그에게서 엄마에게 애들이 왔냐고 묻는 전화가 걸려오면 그때부터 내 마음은 매우 불편하고, 무겁다. 곧 도착한다는 뜻이다.
엄마집에 그가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게 날카롭게 나를 짓누르고 찌르는 것 같아 한 공간에 있기 힘들다. 이런 내게 쿠션 역할을 해주는 엄마와 남편이 그 자리에 같이 없다면 일초도 그와 함께 머무를 수 없다.
지난 추석이었다.
애들 왔냐는 그의 목소리가 엄마의 전화기 너머 들린다. 무얼 사가야 하냐며 이미 취한 목소리로 연신 되묻는다. 그냥 오라는 말에도 굳이 홍어회와 소주를 사 왔다. 늦은 아침을 먹고 과일까지 먹어서 전혀 배가 고프지 않은데, 먹어보라며 홍어를 젓가락으로 들어 보였다.
초장을 덜지도 않은 채 홍어를 찍어서 쩍쩍 먹는 모습에 비위가 상했다. 그나마 사람대접 해주는 엄마에게 말을 걸고, 점점 언성을 높이며 자기주장만 펼치는 모습에 슬며시 일어나고 싶었지만 엄마를 위해 잠자코 있었다.
그 와중에도
" 먹을 줄도 모르네.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안 먹나. 참 나, 얼마나 맛있다고. 먹어봐라. 난 이게 세상에서 제일 이더라. 이 맛있는걸 왜 안 먹어. 이해가 안 가네 "
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 비위상하는 홍어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네다섯 번 권하는 그의 폭력적인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결국 안 먹는다고 역정까지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가 나서서 먹기 싫은 거 억지로 권하지 마라, 당신 입에나 맛있지 다른 사람은 싫다는데 그만해라, 라며 강하게 얘기하고 나서야 그의 강압적 권유는 멈췄다.
정적이 흐르는 싸늘한 이 기류는 목욕탕에서 돌아온 남편이 장인의 홍어에 장단을 맞춰주고 나서 조금씩 풀어졌다. 소주잔을 같이 기울이고 술주정을 한참 들어주고 나니, 이제 가야겠다며 잘 펴지지 않는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지옥 같은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취해서 고삐가 풀려 사위에게 아무 얘기나 막 해대는 아빠라는 사람이 너무 부끄럽다. 내겐 그 순간의 공기, 정적, 가슴 답답함, 그의 언짢은 목소리 모든 게 폭력이다.
78세의 노인은 몇 마디 말만으로도 여전히 나를 옥죄고 무섭게 만든다. 젊은 날에 비해 굽은 등과 왜소한 몸집이지만 말투와 생각에 깔린 그의 폭력성은 여전하다. 나는 정말이지 그 폭력성을 저주하며 혐오하고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내뱉는 아빠라는 단어만 들어도 ptsd가 온다. 슬프다.
왜 나는 정상적인 아버지를 갖지 못했는지 원망스럽고, 내 기저에 깔린 패배주의도 그가 휘두른 폭력 때문에 생긴 것을 알기에 화가 난다. 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충분히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얼마나 자식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주는지 존재인지 본인이 죽는 순간이 다가와도 모르겠지
#폭력#자존감#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