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떠났을 때 울지 못했다

2011년의 기억

by 로우어


그 일이 몇 년도였는지 점점 헷갈리다가도, 첫째 아이가 4살 때 일이었던 것만큼은 아직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이의 나이에서 4를 빼면 15년 전이니까 2011년의 일이다. 벌써 15년이나 지났다.

15년의 세월 동안 한순간도 오빠를 잊은 적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복하게, 때론 우울해서 미칠 것만 같은 나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예고 없이 그가 떠오른다.


4살 아이와 놀아주며 에너지를 쏙 빼고 한숨 돌리던 어느 여름날 오후,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먹이며

" OO이가, OO이가,..."만 반복하시며 차마 죽었다는 말은 못 하고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다. 마음 추스르고 조심히 내려오라는 당부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하며 '죽었대. 죽었대.' 혼자 말을 계속하는 나의 이상행동에 남편이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잡고 흔든 게 기억난다.


아무 옷이나 입고 의료원으로 가는 길

엄마는 충격으로 중환자실에서 친척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외숙모는 내게 엄마 앞에서 울지 말라고, 절대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나의 눈을 보고 말 한마디 못한 채 그저 눈물만 흘리는 엄마가 가여워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그녀의 손을 잡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빠는 엄마의 전부였다.

웃으며 글을 쓰는 옆모습이 영정 사진이었다. 막상 그 사진을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정말 죽었구나. 진짜 이젠 볼 수 없구나.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그리 떠났나..

입관 전 마지막으로 보러 갔을 때, 푸른색으로 변한 얼굴이 무서워서 바로 뛰쳐나와버렸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어른들은 저마다 곡을 하며 슬픔을, 아픔을 토해내는데 난 눈물도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너 울어야 안 힘들다, 여기서 다 토해내라는 말씀들을 들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를 화장하고, 엄마의 바람대로 시골의 저수지와 땅에 보내 주었다. 중환자실 퇴원 후 장례 절차를 하나도 지키지 못한 엄마는 집에서 이모의 보살핌아래 겨우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 여름이 어떻게 지났는지 계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2011년은 그렇게 묻었다. 무엇이 그를 죽게 했을까.

불편한 몸 때문인가. 언제부터 계획을 한 것일까.

대학교 때부터 어울렸던 후배들의 전화를 받고, 자고 온다며 웃으며 집을 나간 게 마지막이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을 방조한 이들이 아닐까 의심하며 어떻게든 찾으려 혈안이 되었을 때 엄마는 그냥 두라며, 그게 자기가 소망한 일인데 그냥 보내주라고 했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통신사를 찾아가 전화 내역을 뽑아도 발신 내역만 받을 수 있으니, 누구의 전화를 받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온라인상의 접속 기록을 다 뒤져보았을 때도, 어느 출판사의 게시판에 자기가 투고한 원고가 선정되었는지 묻는 글 하나밖에 찾을 수 없었다.

경찰조사 결과 타살을 의심할 정황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바람처럼 세상에서 사라졌고, 어떤 기록도, 친구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뇌성마비 때문에 손을 정교하게 쓰지 못해 대신 운동화 끈을 묶어주었던 게 기억났을 때

그가 아꼈던 책을 집에 가져와 펼쳐 보는 순간

가장 좋아했던 이승환의 노래를 어쩌다 들을 때

누군가가 자기 친정오빠 이야기를 할 때

오빠 생각이 났다. 그리고 혼자서 서럽게 울었다.


모든 기록을 다 삭제하고 엄마의 번호만 남긴 그의 휴대전화가, 그가 느낀 고립과 단절을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단 하나의 끈이었던 엄마의 번호는 차마 지우지 못했나 보다.


더 자주 연락할걸... 지켜주지 못한 그때의 내가 싫고 여전히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죄책감#죽음#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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