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엄마의 떡국

by 로우어


내가 어릴 적에, 안방에 모여 밥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연예인들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누던 시절이 꽤나 길었다. 부엌과 거실을 놔두고 안방에 모인건, 그 두 공간을 술과 담배연기로 장악해 버린 아빠 때문이었고,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건 티브이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화면 속에서 종로 보신각에 모인 사람들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 올 한 해의 소망들을 가슴 벅찬 표정으로 인터뷰하는 그들에게 대리만족과 설렘을 느꼈다.

한파의 추위에 떡국을 먹으며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새해를 맞이했다. 엄마, 오빠, 언니, 나 이렇게 네 명은 문밖의 폭군을 피해 안방에서 티브이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 영향인지, 50이 넘은 언니는 지금도 항상 티브이와 함께 생활한다. 연예인에 관심이 많고 티브이 프로그램을 여전히 다 꿰고 있다. 관찰 예능을 보며 깊게 공감하고, 누군가의 성형여부를 판단하고, 연예인을 자기의 지인처럼 가깝게 느낀다. 엄마는 트롯 프로그램을 다 섭렵해서, 가수들의 각종 개인사까지 내게 다 설명해 줄 정도다. 오빠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살아있다면 여전히 영화에 미쳐있을 것이고, 해외 축구를 계속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2026년의 첫날.

우리 집의 풍경은 나의 유년시절과 너무나 다르다.

정오가 지나도 방에서 나오질 않는 예비고3 아이와, 휴일 눈 뜨자마자 패드로 숏츠를 보는 초등아이.

방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누워있는 아이들 아빠.

요리도 못하는 나는 육수 한 알을 물 받은 냄비에 풀고, 마트에서 사다 놓은 떡국떡을 꺼낸다.

손질한 다시용 멸치로 끓여주던 엄마의 깊은 떡국맛은 낼 수 없기에, 지단과 김가루, 신김치를 나름 정성스레 준비했다.

떡국을 싫어하는 큰 아이는 부르지 않았고, 나머지 세 명이서 식탁에 모여 그다지 당기지 않는 식욕이지만 한 숟가락씩 맛을 본다.


정말이지 맛이 없다.

작은 안방에서 넷이서 함께 도란도란 좁은 밥상에 모여 후루룩 떠먹던 그 떡국맛이 그립다.

식으면 맛없다고 연신 뜨뜻할 때 먹어야 된다며 잔소리하는 그 풍경, 채 다 먹기도 전에 냄비에 남은 떡국을 한국자씩 떠서 내 접시에 가득 채워주는 엄마의 손길.


너무 그리워서 오늘 아침

맛없는 나의 떡국을 먹다가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땐 너무 힘들었는데 문득 그 시절이 그립다.

이제 다신 오지 않을 그 시간
















#새해#떡국#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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