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우어 Dec 10. 2022

인간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염미정은 나를 아프게 해



 혼자서 멍 때리는 시간에 나의 해방 일지를 틀어 놓는다. 라디오처럼 쉬지 않고 조곤조곤 이어지는 대사는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염미정이 구 씨와 썸을 타고 서로를 본격적으로 추앙하면서 평온함에 설렘이 추가된다.  이름조차 감추는 낯선 남자와 연애를 시작한 미정에게 어쩌려고 그러냐며 언니 기정이는 부러움이 깔린 걱정을 한다.

미정이는 말한다.


인간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부모한테도 그런 대접 못 받고 컸어, 우리.


미정이의 말에 기정이는 입을 닫는다.

인간대 인간으로 응원만 하겠다는 그녀의 대사는 티브이를 켜놓고 스마트폰에 집중하던 나를 티브이 화면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인간대 인간. 무조건적인 응원. 부모. 대접.

문장 안에 내 가슴을 두드리는 단어가 빼곡하다.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인간 자체로 구 씨를 무조건 응원하겠다는 것. 부모에게도 대가 없이 받아본 적 없는 응원을 그에게 대접하겠다는 것.


 미정이의 대사에 마음이 아팠다.

능력이 탁월해도 비정규직 그녀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상사와, 웃고는 있지만 그녀보다 우월감을 가진 정규직 동료들. 그녀를 둘러싼 주변은 인간대 인간으로 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녀의 아빠 염재호는 자식들과 소통 없이 일에만 빠져있고 엄마 역시 아빠 눈치를 보며 아등바등 살아가기 바쁘다.


한 번도 잘했다, 기특하다, 넌 잘할 거야 그런 말들은 듣질 못했다. 태어났을 땐 세상의 빛과 같은 존재였을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도 그런 말 한마디 해주질 않았다. 믿었던 전 애인에게마저 외면당했다. 그래서 구 씨에게 추앙을 요구했나 보다.


미정이의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사에 내 상황이 겹쳐져 마음이 아팠다. 이해관계없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응원만 하는 건 가족이어도 쉽지 않다. 아이에게도 '이만큼 너를 위해 애썼으니 너도 그에 맞게 행동해'라는 보상심리가 깔려있다. 부모가 되면 무한히 애정만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원인을 찾자면 나 역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미정이처럼 나도 부모에게조차 대접 못 받고 컸다. 칭찬은 매우 인색하고, 본인의 힘듦만을 늘어놓는 부모가 싫었고 내 자존감은 나 스스로가 지켜야 했다. 스스로 지켜가는 게 힘들 땐 친구에게, 연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남보다 수십 배의 용기를 끌어내야 . 남들 앞에서 말을 잘못해 글을 쓰는 게 차라리 편한 적이 많다. 얼마나 슬픈가.


  부모의 어두움과 무관심 자녀에게서 자존감과 평온함을 모조리 빼앗아간다. 어릴 때 느낀 정서적 상처 어른이 되어서도 가슴에 단단히 새겨져 있다. 상처는 점점 무뎌지는 것이지 완전히 잊힐 리가 없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기라도 하는 것이 다행이다. 나이 먹는 게 싫지만 우울한 어린 날의 나에게서 나이 먹는 만큼 멀어질 수 있기에 역시나 다행이다.




 아이들에게 미정이가 느낀 상처를 남겨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왜 그래! 내가 얼마나 키우느라 힘든데 넌 고작 그것도 못해! 네가 힘들게 뭐야!

이딴 생각은 지우기로 했다.

너니까 응원할 거야. 너니까 사랑할 거야. 인간대 인간으로 응원만 하고자 한다.


염미정은 나 하나로 충분하니까.









#나의해방일지#염미정#인간



작가의 이전글 싹싹하지 않은 게 죄는 아니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