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같이 나이 드는 중
문득 서글픈 어느 날
다이소와 반찬가게에 다녀오는 길에 오랜만에 엄마와 전화를 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엄마와의 전화도 드물어졌다. 엄마는 조카의 점심을 챙겨주기 위해 언니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언니는 지난해 이혼을 했고 초6 남자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 되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체력이 달리고, 원래도 엄살이 심했던 그녀가 아들과 먹고살기 위해 공장으로 출퇴근을 한다. 방학기간 혼자서 인스턴트로 점심을 때울 조카가 안쓰러워 엄마가 들르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 늦은 아점으로 비빔밥을 해서 아이들과 먹었다. 그리고 전날 눈이 녹아 지저분한 미끄럼틀을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엉망이 된 둘째의 패딩을 손빨래하고 다시 세탁기에 넣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미술학원으로 출발할 시간이 되어 후다닥 옷을 입히고 킥보드를 이끌고 학원으로 향한다. 90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고 비빔밥을 하느라 다 먹어치운 계란이 생각나서 마트로 향한다. 공원을 반바퀴 걷고 마트에 들러 스파게티 소스와 우유, 야채와 계란 한 판을 샀다. 한 손에는 종량제 봉투에 담긴 식재료가 다른 한 손엔 십자모양 끈으로 아슬아슬 균형을 잡는 계란 한 판이 들려졌다. 꽤나 무거운 양손과 곳곳에 빙판이 남아있는 터라 종종걸음으로 900미터를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짐을 내려놓고 서둘러 첫째의 빠른 저녁을 챙겨준다. 학원이 끝나면 9시가 넘고 집에 오면 냉장고만 계속 들추는 녀석이 걱정되어 5시가 되기도 전에 저녁을 차린다. 그리고 바로 미술학원에 있는 둘째를 데리러 간다. 욕심이 많은 아이라 무언가를 더 만든다고 20분이 더 지나서야 학원에서 나왔다. 집에 오니 어느덧 6시가 다 되어간다. 배고프다고 노래하는 아이를 위해 설거지거리가 쌓인 주방에서 무언가 치울 새도 없이 목살을 굽고 밥을 푸고 있다.
하... 나도 모르게 한숨을 연거푸 내쉬고 있었다. 소리 없는 전쟁터에서 정신없이 혼자 왔다 갔다 진두지휘하는 모습이다.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 거울의 내 모습을 보니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훨씬 늙은 내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피곤함에 찌든 40대 엄마의 얼굴이 거울 속에 있다.
어릴 적 엄마가 양손에 비닐봉지가 터질 듯 가득 장을 보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152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했다. 억척스러운 그녀가 자동차를 끌고 구두를 신고 출퇴근하는 다른 아이의 엄마와 비교될 땐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팔이 빠질 듯이 아파와도 악착같이 들고 왔을 그녀의 마음을 왜 몰랐을까.
엄마는 조카의 점심을 챙겨주고 정형외과에 간다고 했다. 오른쪽 무릎이 아파서 걸을 때마다 고통이 느껴진다고 한다. 언제부터 그랬냐, 지난번에 보내 준 초록잎홍합은 다 먹었냐는 나의 걱정에 나이 들면 관절이 원래 다 그런 거라며 별것 아니라며 날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앞으로 그녀는 몇 해 동안 조카의 방학 점심을 챙겨줄 수 있을까? 늙으면 죽는 일이 가장 걱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엄마의 말들이
내 머리에 맴돈다. 늙어가는 엄마를 보는 일이 이토록 서글픈 일인지 미처 몰랐다.
그냥... 엄마의 몸과 마음이 사는 동안 행복했으면 좋겠다.
#엄마#노인#일상#40대#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