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정원
여행 중, 느낀 게 하나 있다. 잠을 너무 잘 잔다는 것. 평소에도 잠을 잘 자긴 하지만, 여행 중엔 일찍 일어나더라도 늘 개운하게 일어났다. 여행이 체질에 잘 맞는 거 같아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에서의 본격적인 첫날도 정말 개운하게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거실로 나가 커피를 내려 마셨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아침 햇살과 맞닿은 에펠탑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프랑스 하면 에펠탑, 바게트 그리고 예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예술의 나라답게 파리 안에서만 해도 가봐야 하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믿는 편이라 여행 전에 여행지에 대해 공부를 했고 자연스럽게 무지했던 미술에 대해서도 알아갔다. 그러다 미술의 매력에 빠져버린 나는, 미술관을 하루에 한 곳 혹은 두 곳은 꼭 다녀왔다.(파리 여행을 간다면 뮤지엄패스는 구매해서 가길 바란다. 파리의 유명 미술관, 박물관, 명소 등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을 뮤지엄패스로 입장이 가능하다)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와 빵을 사러 갔다. 숙소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근처에 있는 빵집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먹어보고 싶었던 크루아상과 뺑오쇼콜라만 구매를 했다. 그리고 튈르리 정원으로 향했다.(튈르리 정원은 루브르 박물관과 콩코르드 광장 사이에 위치한 정원이다. 굉장히 넓고, 굉장히 예쁜 정원이다) 튈르리 정원의 시그니처인 초록색 의자에 앉아 빵을 먹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한국보다는 덜 달지만 맛은 큰 차이가 없어서 아주 조금 실망을 했다.(웬만해선 바게트 대회에서 수상을 한 빵집을 가길 바란다. 그런 곳은 빵이 굉장히 맛있음) 그래도 튈르리 정원에서 햇살을 맞으며 먹으니 빵이 맛있게 느껴지는 거 같기도 했다. 빵을 다 먹고 대망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다. 튈르리 정원에서 얼마 걸리지 않아 걸어서 이동을 했는데 너무 좋았다. 오전의 햇살과 푸릇푸릇한 나무들, 그리고 여유로운 사람들의 표정까지.. 나도 괜스레 걸음을 더 느리게 걸으며 오르세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을 최대한 느끼고자 했다.
보안검사를 하고 미술관에 들어가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오디오 가이드 빌리는 곳에서 한국어로 달라고 했더니 직원분이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그래서 나도 "감사합니다. 멕시"(Merci 메르시 : 프랑스어로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며 기분 좋게 미술작품을 보러 갔다.
제일 먼저, 인상주의 미술작품들을 보러 갔다. 인상주의 작품 층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었다. 영국도 그랬지만 프랑스도 작품 앞에 경계선이 없어 작품을 정말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그림의 물감 자국, 붓 터치 모두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매번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던걸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빈센트뿐만 아니라 고갱, 세잔, 모네, 마네 등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들을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천천히 감상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예전에 기차역으로 사용된 곳이라 미술작품뿐만 아니더라도 구경할 거리가 정말 많았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3시간은 족히 오르세 미술관에서 머물렀다.
오후에는 로댕 미술관으로 갔다.(뮤지엄 패스로 가능. 오르세 미술관도 당연 가능함) 로댕 미술관도 도보로 가능한 거리에 있어서 천천히 걸어갔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눈꺼풀을 무겁게 했지만 파리의 예쁜 건물들을 구경한다고 나름 즐겁게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6월에 갔다 보니 로댕 미술관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꽃, 나무, 풀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작품들이 놓여있었다. 미술관 안엔 정원도 함께 있었다. 정원에는 분수가 틀어져있고 사람들은 곳곳에 놓여있는 로댕의 작품들을 감상을 하다 정원으로 와, 사진을 찍고 의자에 앉아 잠깐 쉬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정원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하루 종일 걸었더니 몸이 피곤했고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정원의 분위기 때문에 졸음이 쏟아졌다. 의자에 앉아 미술관을 바라보았는데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분위기 있고 아름다운 미술관을 또 가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로댕 미술관은 정말 멋졌다.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 한국에서 챙겨 온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따사로운 햇살 덕에 책은커녕 졸음과의 싸움을 한다고 혼이 났다.
이 정도면 충분히 즐긴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의자에서 일어나 미술관을 한 번 더 둘러본 뒤 로댕 미술관에서 나왔다.
로댕 미술관 정원에서 미술관을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있는데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 잠깐 잊고 있던.. 아니, 행복감 덕분에 생각날 때마다 잊혔던 나의 현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어떠한 선택들을 하게 될 거고, 어떤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까는 생각들. 로댕 미술관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서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잊고 있던 나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답과 끝이 없는 질문들에 대해 잠깐 사로잡히게 되며 착잡해지던 순간, 나는 미래의 나에게 모든 선택들을, 일들을 맡기기로 했다. 무책임함과는 별개로 지금 내가 봐야 할 것들, 지나면 당분간은 보지 못할 모든 순간들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지금의 내가 그 역할을 잘해준다면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 다녀오고 선택해야 하는 일들과 내가 짊어질 무게들에 대한 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다행히도 그것들에 막연함보다는 당연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됐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미래의 내가 해야 할 일, 짊어지게 될 무게와 책임들을 지금의 내가 걱정하기보다는 미래의 내가 더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현재의 나로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을 했다.
로댕 미술관에서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 생각들을 하게 되었음에 감사하며 그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6월의 로댕 미술관을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