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작가 도전기 (1) - 기초반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 후기

by 이담

나는 고백하자면 아주 예전에 웹소설을 써본 적이 있다. 벌써 이십여 년 전이지만, 중학생 때, 그때는 귀여니 열풍으로 너도 나도 소설을 쓰겠다며 인터넷 소설 카페에 가입해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글을 올리곤 했다. 지금은 청소년들 감성에도 버거운 이모티콘이 남발하는 소설이 소비되던 시기였다. 나도 사실 그다지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가 했던 건 아니고, 웹소설을 읽다 보니 '나도 쓰고 싶다'라는 생각에 시작했던 거였다. 아무런 구상이나 기획 없이 즉흥적으로 써 내려간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워 나는 내 글을 '설'이라고 했다.)인 것에 비해 내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다. 또 백몇회차를 넘기는 몇 편을 완결까지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충 블로그에 글 쓰듯이 그날그날 창열고 아무렇게나 써 내려간 글일 뿐, 소설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생각도 안 나지만, 흔한 로맨스가 그러하듯 중고등학생 여자애와 남자애가 이리저리 엇갈리고 엇갈리다가 결국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싸이월드에 일기장이나 썼더랬다. 지금도 기억하고 좋아하는 글은 긴 시간 학교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봤던 여자의 묘사를 썼던 편이었다. 지하철에서 본 가녀리고 긴 검은 생머리에 하늘하늘 한 원피스를 입고 어깨에는 토트백을 걸친 그녀는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인상적이라고 느낀 것은 그녀가 메시지에 답변이 오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핸드폰을 확인하던 모습이었다. (지금의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 2g 폰 때였기 때문에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곤 문자 주고받기 정도였다.) 그 순간 바로 알아챘다. '아, 좋아하는 사람과 연락하는구나' 그게 신기하고 흥미로워 그 관찰했던, 생각했던 내용을 일기장에 썼었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이유는 저 설렘의 순간이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이 글에 댓글로 '와 누나 글 졸잘 써'(실제 댓글 그대로)라고 달아주었던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도 물론 맘에든 글이었지만 누군가가 내 글을 인정해 주었던 기억이었기에 지금까지도 그 순간이 또렷이 기억난다.


'아 나는 글쓰기를 참 좋아해. 그리고 그 글로 칭찬을 받는 게 기뻤지. 그렇구나.'


그래서 그냥 해보기로 했다. 일단은 첫 번째 직업탐방일지 새로운 시작일지 모르지만 수많은 직업 속에서 앞으로 내가 평생을 해야 한다면 기왕이면 정말 재밌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수일의 검색을 통해 '작가교육원'을 통해 기본 교육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때마침 모집기간이어서(매년 4월과 10월에 개강한다.) 바로 '한국방송작가협회교육원'에서 기초반을 신청했고 첫 강의를 들었다. 첫 강의는 강사님의 자기소개와 해당기수 학생들이 각자 소개를 하고 기본 구성에 대한 강의를 짧게 해 주셨다. 정말 우습고 무서운 것이 나서서 발표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런 경험들을 안 해 버릇 하니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앞에 나가서 준비한 자기소개를 하고 갑자기 위경련이 나서 이후에 어떻게 버텼는지 정신이 없었다. 상황이 무서웠다거나 강사님이 무섭게 했던 건 아니다. 생각보다 경직된 분위기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와중에 자기소개를 해보니 문예창작을 전공한 사람도 많고 이제 갓 대학생인 어린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공도 안 하고, 경험도 못해본 30대 후반의 애엄마라는 생각에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이후 강사님께서 간단히 구성에 대한 강의, 그리고 과제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앞으로 우리가 쓸 시나리오는 뉴스를 많이 보고 정해보라고 얘기해 주셨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 꽂혀서 혼자 습작을 해보고 있었는데, 강사님께서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일기장에 쓰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 이슈가 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하셨다. 쌩초보인 나에게 인상적인 설명이었다. 그리고 일단 데뷔 후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생겼다.

반장을 정하고, 랜덤으로 팀을 짜고 시놉시스 발표순서를 정하고 팀장을 정했다. 나는 주로 나서는 입장이기보다는 따르는 입장일 때가 마음이 편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 이후에 알게 된 것은 (비공식적으로) 팀장이나 반장을 하면 다음반으로 올라갈 때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이 나서고 큰 목소리 내는 경험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시놉시스라는 말과 시나리오라는 말을 착각해서 4주 이내에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하는 줄로 착각했다. 그 때문에 처음엔 큰 압박감을 느꼈는데, 이후에 시놉시스라는 개념을 알게 된 뒤 다시 생각해 보니 시놉시스는 간단한 줄거리까지만 작성하는 건데 4주나 걸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고민 없이 작업하고 있는 걸까? 아직은 모호하고 딱 떨어지는 것이 없어 불안하다. 강사님도 뭔가 냉철하고 단호해 보이셔서 질문을 많이 해도 될지 걱정이다. 일단은 최근 뉴스들을 유튜브로 찾아보고 한 가지 소재와 이것을 풀어나갈 방식에 따라 3가지 갈래로 이야기의 시놉시스를 작성했다. 완성한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발표를 하고, 동기들과 강사님에게 피드백을 받았다. (지금은 기억이 조금 흐려져 정확하진 않지만) 이후 수정 시놉시스를 강사님께 확인받은 뒤, 씬별로 상세한 내용을 적어 시작부터 끝까지 정리한 트리트먼트, 그리고 트리트먼트를 바탕으로 대본을 작성해 발표하고 동기와 강사님께 피드백을 받았다.

피드백 중에는 생각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또 역시나 내가 고민하던 부분도 있었으며, 내가 의도한 바를 알아차리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내가 좋게 느끼거나 당연하게 느끼는 모든 부분들이 타인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경험을 한 것이다. 교육원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반면, 글이라는 게 주관적인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취향이나 눈을 타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글을 완성하며 스스로도 '아, 이거 좀 그런가? 이거 좀 별론데, 아니 괜찮을지도..?' 하고 타협했던 부분은 귀신같이 티가 난다. 자신에게 관대해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스스로의 나쁜 습관을 확인하게 되기도 했다. 나는 T와 F의 사이 중간인간임에도 스토리상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을 넘어가지 못하는 습관이 있었다. 현실과 다른 묘사가 나오면 그게 신경 쓰여서 극 전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부분에도 보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인 판단이 많이 작용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현실적이지 않다 느끼는 부분을 현실적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고 내가 현실적이라 느끼는 부분을 비현실적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었다. 결국엔 이것 또한 어느 하나를 고집하기 어려운 부분 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점과 경험을 들어봐야 하는 일 같다. 그리고, 나는 평소 편견이나 선입견에 대해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드라마를 쓴다는 것,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편견에 똘똘 뭉친 시선으로 보아야만 공감대를 일으킬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스토리에서 편견에 맞춰 설정한 포인트를 깨고 성장하는 진행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 과정을 통해 21주간 기초반 수업을 마친 뒤에는 하나의 온전한 대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기초반에 들어가기 전 이런저런 걱정으로 작가들이 많이 들어간다는 카페를 찾아 글을 찾아보고 후기를 찾아보고 했었다. 그런데 경험해 보니 결국엔 이것도 사바사라, 오티 때 분위기를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래도 초반에 팀을 정하고 팀끼리 스터디를 시키거나 발표를 시키는 건 대다수의 분위기 같다. 이때 조성된 팀이 잘 이끌어지면 연수반, 전문반, 더 나아가 창작반이나 데뷔까지도 유지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만약 지금 기초반을 앞둔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적극적으로 팀활동을 하고 스터디를 꾸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막연하게 두려움이나 걱정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기초반은 막상 들어가 보면 다들 비슷한 처지에 있다. 아무리 전공생이거나 어리거나 각자의 분야에 전문가라고 해도, 대본을 쓰는 작업에서는 모두 같은 초보자다. 이 점을 잊지 않고 자신의 작업에 집중한다면 어렵지 않게 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비전공 무경력 애엄마 취업은...